삼성전자는 곧 출시할 신형 스마트워치 '기어S'에 노키아의 전자 지도(地圖) 앱(응용프로그램)인 '히어맵(Here map)'을 탑재할 예정이다. 노키아 지도는 국내에선 서비스가 안 되지만, 해외시장에선 '구글맵(Google map)'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지도 중 하나다. 이미 유럽에서 구글 지도의 대항마로 통한다. 미국과 유럽 자동차의 80%에는 히어맵이 들어간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다. 업계에선 구글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전자가 스마트 기기에 노키아 지도를 채택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함께 지도는 순식간에 손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까지 이 시장의 최강자는 구글이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웹인덱스에 따르면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의 54%가 구글지도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IT 거인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도 자체적으로 전자 지도를 개발하거나 관련 기업을 인수하며 이 시장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마트폰 지도 시장을 지배해온 구글 천하(天下)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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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까울수록 더 유용해지는 정보

모바일 환경에서 모든 정보는 공간(위치) 정보와 함께 제공된다. 소위 '정보의 공간화'다. 이는 모바일 광고시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富)의 미래'에서 "앞으로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에 선택적으로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미래의 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보았다.

생각해보면 간단한 이치다.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정보가 더 가치가 있으며, 나와 관계있는 장소 또는 관심 있는 장소에 해당하는 정보가 더 중요한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무수히 많은 정보 중에서 사용자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면 정보를 지도 위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가 바로 전자 지도인 것이다.

공간 정보가 더해진 사용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모바일 IT(정보기술) 생태계의 핵심 동력으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스타벅스를 찾을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스타벅스부터 순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갖는 식이다.

우리의 생활 전반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모바일화(化)하고 있다. 프랑스 광고업체인 크리테오는 올 1분기에 발생한 전자상거래의 66%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는 실내외를 아우르는 3차원 지도의 구축과 이에 기반한 정보의 공간화가 구현돼 훨씬 정확한 위치 기반의 맞춤형 광고 시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이 지도 전쟁을 벌이는 이유

연세대 허준 교수

요즘 글로벌 IT 기업들의 경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스톱 숍(One-stop shop)' 구축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동시에 보유해 자기만의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생태계 구축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지도다. 구글은 2005년 5월 구글 지도를 출시한 이후 지속적으로 기능을 보강하고, 해저와 우주로까지 영역을 확대해왔다.

애플은 2012년 9월 자체 지도를 아이폰에 기본 앱으로 장착했다가 지도에서 오류가 발생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최고경영자(CEO) 팀 쿡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애플 지도는 꾸준한 투자 속에 성능을 개선하며 차근차근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는 작년 9월 기준으로 점유율 30%를 확보했다. 특히 지난달 18일 공개된 아이폰 운영체제 'iOS8'에는 정확도가 훨씬 향상된 지도가 탑재됐다. 자신의 자동차 위치 파악과 같은 사용자의 편의 기능도 보강됐다. 미국 시장에서 자신감을 회복한 애플은 앞으로 전 세계 지도 구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MS 역시 2005년부터 구축해온 '빙맵(Bing map)'을 갖고 있다. MS는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자체 휴대폰을 갖게 됐다.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4를 공개하던 날, MS는 신형 스마트폰 '루미아' 3종을 공개했다. 재미있는 것은 루미아에 기존에 갖고 있던 지도인 '빙맵' 대신에 노키아의 지도를 기본으로 탑재한 점이다. 조만간 빙맵과 노키아의 히어맵이 결합된 또 다른 지도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최강자’ 아마존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아마존은 올 7월 자체 운영체제를 갖춘 ‘파이어폰’을 출시했다. 여기에는 아마존이 2012년 인수한 3차원 지도 제작업체 ‘업넥스트’가 만든 지도 앱이 기본으로 탑재됐다.

지도를 통한 모바일 IT생태계 구축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담는 그릇으로서 운영체계(OS)가 중요하듯이, 앞으로는 넘쳐나는 정보를 담는 그릇으로 지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애플과 구글, MS, 노키아, 아마존 등이 글로벌 ‘지도 대전(大戰)’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IT기업들은 중국 화웨이나 샤오미 같은 후발 주자들과의 경쟁에 직면해 있다. 벌써부터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 기업들은 단순한 IT기기 제조업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도 직접 모바일 IT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구글과 겨뤄야 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남아 있는 지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 세계의 지도 업체들을 무서운 속도로 합병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