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들 보이지(Voyage)’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지난달 18일 새 전자책 단말기 '킨들 보이지(Kindle Voyage)'를 선보였다. 기존 킨들보다 얇고 가벼워졌으며 화면 해상도와 밝기도 개선됐다. 단말기 테두리를 터치해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과 주변 밝기에 따라 화면 밝기가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아마존이 새 킨들을 앞세워 한국에 진출한다면, 국내 전자책 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바뀔까. 전문가들은 전자책 단말기 싸움에서는 아마존이 국내 전자책 단말기 업체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글 콘텐츠 부족 문제는 아마존이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아마존이 도서 정가제를 고수하는국내 출판업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킨들보이지는 전작인 '킨들 페이퍼화이트(Paperwhite)'와 마찬가지로 6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있으며 무게는 180g, 두께는 7.6mm(와이파이 전용 모델 기준)로 얇고 가벼워졌다. 화면 해상도도 212ppi에서 300ppi로 개선됐다. 페이지 넘기기 기능도 화면 위를 터치하는 방식에서 기기 테두리를 누르는 '페이지 프레스' 방식으로 변화를 줬다.

주변 밝기를 자동으로 감지해 최적의 화면 밝기를 제공해주는 '인텔리전트 프론트 라이트닝' 기능도 있다. 킨들 시리즈 최초로 유리 스크린과 마그네슘 소재 본체를 사용했다. 가격은 199달러(약 21만3000원)로 오는 21일 출시 예정이다.

국내에선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등 대형 온라인 서점들이 자체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고 있다. 가격은 킨들보이지보다 비슷하거나 저렴했지만, 무게와 해상도는 모두 떨어졌다. 아마존은 79달러(약 8만2300원)의 저가형 모델도 있다.
아마존은 킨들을 자체 개발한 반면, 국내 단말기는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만들어진다.

예스 24가 올해 선보인 '크레마 원'은 7인치 컬러 화면에 1.2GHz 쿼드코어 CPU, 2GB RAM 등 고사양 하드웨어를 자랑한다. 정가는 21만 4천원.교보문고의 전자책 단말기 샘은 아이리버와 제휴를 통해 지난해 2월 출시됐다. 킨들과 같은 6인치 e잉크 패널을 채택했으며 정가는 14만 9천원이다. 교보문고의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매달 일정한 금액에 단말기와 전자책 서비스를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출시된 인터파크의 비스킷탭은 7인치 컬러화면과 1.6GHz 쿼드코어 CPU, 1GB RAM을 갖춘 고사양 태블릿 PC임에도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16만 9천원이다.

<표> 주요 전자책 단말기 사양 비교

하드웨어의 스펙도 스펙이지만, 서비스도 국내 전자책 단말기 업체의 약점이다. 아마존은 클라우드 기술을 바탕으로 킨들과 태블릿, 파이어폰 등 자사의 여러 기기들에 콘텐츠 동기화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학교·기업과 같은 단체가 구성원들의 전자책과 문서를 관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위스퍼캐스트(Whispercast)’ 기능 등 단말기와 연결된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된다.

국내업체들은 단말기 측면에서 아마존에 우위를 점하기 힘들기 때문에 콘텐츠와 도서정가제를 무기삼아 아마존과 경쟁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예스24는 최근 두산동아를 인수하며 전자책 단말기 사업에 각종 교육 콘텐츠를 더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 음악,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는 크레마에 교육 콘텐츠까지 결합된다면 국내 진출 초기에 한국어 콘텐츠 기반이 빈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마존과 경쟁해 볼만하다.

도서정가제도 국내업체의 무기다. 도서정가제란 서점의 도서 가격 할인을 제한하는 제도로 과다한 책값 인하를 막고 콘텐츠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에 대해 이중호 미래출판전략연구소장은 “국내 도서정가제가 아마존 킨들의 저가 정책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 되겠지만, 정가제를 실시 중인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킨들의 시장 점유율이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전자책 시장은 판매가격을 출판사가 정하고 소매업자가 일정 비율의 이윤을 가져가는 애플의 에이전시(Agency) 모델을 채택하고 있어 아마존이 미국에서와 같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출판사들을 제소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마존은 애플과 5개 대형 출판사들을 전자책 판매 가격 담합 협의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으로 애플은 소비자 등에게 4억5000만달러(약 4691억7000만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아마존이 한국에 킨들 사업을 론칭할 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아마존은 2012년 한국법인(아마존웹서비스코리아)을 설립했지만, 기업에 서버와 스토리지 등을 임대해주는 클라우드 사업(AWS)만 진행하고 있다. 아마존의 다른 핵심 사업부인 전자상거래 사업이나 전자책 서비스 사업의 한국 진출에 대해서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다만, 아마존이 미국 현지 구인 사이트를 통해 전자상거래 분야 한국 마케팅 직원과 지사장급 채용 공고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등 한국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는 있다.

킨들 출시 이후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의 종이책 대비 전자책 판매비율이 크게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전자책 시장 점유율이 2% 대에 불과한 점을 들어 아마존이 들어와야 국내 전자책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최근 성장세가 가팔라졌지만, 전체 도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2%에 불과하다. 글로벌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 비중이 약 13%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전자책 시장의 발전은 더딘 편이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야노경제연구소는 올해 일본 전자책 시장 규모가 지난해보다 23.5% 늘어난 1050억엔(1조100억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 연구소는 2012년 후반 아마존이 일본시장에 진출하며 현지 전자책 유통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또 아마존이 영국에 진출한 지 2년 6개월 만에 영국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을 앞질렀다. 독일의 경우에도 3년 만에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의 50% 수준까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