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전남 신안군에 있는 임자도(荏子島)의 한 농가. 4개 동(棟)으로 구성된 총 3300㎡(약 1000평) 규모 비닐하우스 안에서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물을 뿌리고 있었다. 적채·브로콜리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측면의 가림막이 감겨 올라가자 바깥에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근처에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비닐하우스 내·외부에 설치된 수십개의 센서와 200만화소급 CCTV, 농가 안방에 설치된 관제 시스템이 쉴 새 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작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나승철(61)씨는 "옛날엔 혼자 비닐 가림막을 감고 푸는 데만 한 시간씩 걸렸는데 지금은 자동으로 물을 주고 가림막도 걷고 덮는다"며 "뭍에 나가 마음 편하게 일을 보고 여행도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KT가 ‘기가 아일랜드’로 선포한 전남 신안군 임자도. 이곳 주민들은 휴대용 소변 검사 기기인 요닥(YODOC)을 통해 당뇨, 신장 질환 등 체내 질환을 진단하고(왼쪽 사진), 태블릿PC를 이용해 비닐하우스의 관수(灌水), 통풍 등을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

남해안의 작은 섬마을인 임자도가 국내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망이 깔린 첨단 섬 '기가 아일랜드(Giga Island)'로 바뀌었다. KT는 시범 농가와 학교, 마을회관 등 임자도 일대에 일반 인터넷보다 10배 이상 빠른 '기가(Giga)급' 인터넷망(網)을 포함한 첨단 정보통신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을 최근 완료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교실에서 서울의 외국인 선생님들과 원격으로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농민들은 스마트폰 관제 시스템으로 손쉽게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마을회관에 모여 목포YWCA 등의 문화 강좌도 듣는다.

이런 변화는 작년 말 임자남초등학교 5학년 김희주 어린이가 KT에 보낸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됐다. KT의 직원 봉사 조직인 IT서포터즈 앞으로 배달된 이 편지는 '섬마을 아이들에게 ICT(정보통신기술) 활용법을 가르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광주·전남 지역 IT서포터즈 단원 4~5명은 이후 정기적으로 아이들을 찾아가 시골 아이들이 접하기 힘든 아이패드 등 첨단 제품의 활용법을 가르쳤다. 서울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결연을 맺어 외국어와 해외 문화를 배우는 기회를 주선하기도 했다.

KT는 섬마을에 ICT가 필요한 것은 아이들뿐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육지와 떨어진 이곳은 전국에서도 인터넷 활용도가 가장 낮은 곳 중 하나. KT는 서울 강남구 크기에 1800여가구, 3650여명이 사는 섬 전체에 최고 속도의 인터넷망을 깔고 주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신안군과 양해각서(MOU)도 맺었다.

이 사업은 지난 5월 황창규 KT 회장이 '기가토피아' 구상을 밝히면서 급물살을 탔다. 기가토피아는 '인간과 모든 사물이 초고속 인터넷망으로 연결돼 행복해진다'는 의미. 임자도에는 LTE(4세대 이동통신) 기지국 15곳과 중계기 14기, 초고속 무선랜(기가 와이파이) 시설 12기가 설치됐다. 이제는 섬 어디서나 유·무선 초고속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 고길호 신안군수는 "인구가 적고 육지와 멀리 떨어진 우리 지역이 손쉽게 육지와 연결되는 첨단 환경이 됐다"며 "주민들 생활이 크게 편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을 바탕으로 임자도는 KT가 개발하는 각종 첨단 기기의 '테스트 베드' 역할도 하게 된다. KT는 이날 중견기업 에스코넥과 함께 개발한 첨단 의료 기기 '요닥'을 처음 선보였다. 요닥은 소변 검사를 통해 병원에 가지 않고도 당뇨, 신장 질환 등 20여가지 질병을 판별할 수 있는 장치다. 임자보건소에 20개가 비치됐으며 조만간 식품의약품안전처(KFDA)의 3급 의료 기기 승인을 거쳐 시판될 계획이다.

최영익 KT CR실장(전무)은 "기가 아일랜드는 KT의 미래 네트워크 전략과 철학이 담긴 첫 출발점"이라며 "앞으로 ICT를 통한 정보 격차 해소와 지역사회 활성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임자도를 시작으로 경남 하동 청학동과 민통선 내 대성동 마을 등 '기가 인터넷' 사업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가 아일랜드(Giga Island)

1초에 1기가비트(Gb·1024 Mb) 이상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차세대 인터넷 설비를 설치한 시범 지역. 기가급 인터넷은 고화질(HD) 영화 한 편을 10초 안에 내려받을 수 있는 속도다. 현재 유선 인터넷 속도인 1초당 100메가비트(Mbps)보다 10배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