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는 기대감이 높지만,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는 여전히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경기인식이 투자와 고용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앞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할 수 있는 대목. 일각에서는 주력 기업의 체감경기 악화가 세월호 참사 충격을 딛고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BSI, 5개월 만에 100 회복했지만…대기업 vs 중소기업 엇갈려

한국은행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지난달 말(29~30일) 발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기업들의 전반적인 이번달 업황 전망은 지난달에 비해 소폭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이 발표한 10월 전망 BSI는 100.7로 지난 5월 이후 다섯달 만에 기준치 100을 넘어섰다. BSI가 100을 넘는 것은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기업이 나빠질 것으로 보는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0월 전망 BSI는 78으로 기준치 100 아래에 있지만 지난달 보다는 4포인트 상승했다. 경기에 대한 기업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수출기업·내수기업 10월 경기전망지수

특히 내수 산업과 중소기업에서 긍정적인 경기인식이 크게 늘었다. 한은에 따르면, 대기업의 10월 전망 BSI가 전월(81)보다 2포인트 하락한 79에 그쳤지만, 중소기업의 전망 BSI는 전월(68)보다 8포인트 수직상승한 76을 나타냈다. 수출기업과 내수기업의 전망 BSI도 엇갈린 흐름을 보였다. 수출기업의 전망 BSI는 75로 전월과 같았지만, 내수기업의 전망 BSI는 전월(74)보다 5포인트 상승한 79를 나타냈다.

전경련 조사를 봐도 내수산업으로 분류되는 지식 및 오락서비스업(120.0), 출판 및 기록물 제작(113.3), 운송업(109.4), 음식류(103.2), 섬유·의복 및 가죽·신발(100.0) 등은 기준치(100)을 넘어섰다. 하지만, 수출산업에 속하는 중화학공업(99.2), 의료·정밀·전기 및 기타기계(94.3), 1차금속 및 금속가공(97.5)은 기준치를 못넘겨 부정적인 경기인식이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 “내수 살아나지만, 수출 없인 경기 못살려”

전문가들은 이같은 흐름에 대해 “내수경기가 세월호 참사 충격을 상당부분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주력산업인 수출산업과 투자·고용 유발효과가 큰 대기업의 경기인식이 어둡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생산유발 효과가 제한적인 내수·소비 산업만 가지고는 경기회복을 이끌 수 있는 힘이 크지 않다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김용옥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정책팀장은 이에 대해 “세월호 참사로 연기되거나 취소됐던 각종 행사가 다시 열리는 추세이고 추석 등 명절 효과가 있어서 내수가 살아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경기를 크게 개선시킬 수 있는 힘은 없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민 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도 “투자와 고용이 크게 늘어나서 국민들의 임금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규모가 큰 대기업과 수출기업의 경기인식이 개선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지만, 최근의 엔저 현상과 대(對) 중국 수출 둔화 흐름, 유럽의 경기부진 등 대기업과 수출기업의 체감경기가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정부, 엔저위협 대응해야…기업은 투자 보따리 풀 때”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수출·대기업들의 경기인식을 진작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하고,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는 등 내수소비를 확장하기 위한 정책이 쏟아지는 데 비해, 기업의 수출 환경을 개선시키는 정책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주력 상품 상당수가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제품의 수출환경을 악화시키는 최대 위협은 엔저 현상”이라며 “정부 당국이 최근의 환율하락 속도를 조절하는 데 다소 미진한게 아닌가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엔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정부는 환율 미세조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한은 역시 향후 한, 두달 정도 지켜보다 경기회복 흐름이 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금리인하를 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최근의 위기를 ‘혁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술혁신을 위한 선제적인 투자 등을 통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장민 실장은 “최근 내수경기가 반짝하는 것만으로는 경기회복이 지속되기 힘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출경기가 살아나는 게 관건”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해서 제품경쟁력을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