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정 기자

2014년 10월 1일 다음카카오 출범이 정보기술(IT)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날 열린 출범 기자간담회에는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였다. 한 IT 전문매체는 편집국 인력 대다수를 간담회장에 급파해 현장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다음카카오 출범 하루 전인 9월 30일 한남동 다음 사옥에 갔다. 5층 홀에는 내외부 홍보용 동영상이 끝없이 나왔는데, “(한때 1등이었던) 우리가 다시 1등 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한다”는 직원의 인터뷰가 눈길을 끌었다. 연초 7만원대였던 다음 주가도 16만원 후반대까지 치솟아 코스닥 시가 총액 1위에 올랐다.

다음카카오 출범을 보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당연히 한국 인터넷 업계 판도 변화에 미칠 영향이다. 지난해 다음과 카카오는 각각 매출 5308억원, 2107억원을 올렸다. 카카오의 매출 증가 추이가 그대로 이어지고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시너지가 난다면, 연 매출 1조원 공룡이 탄생하는 셈이다. 올 상반기 다음과 카카오톡의 영업이익은 각각 318억원, 808억원으로 카카오가 2배 이상 많았다. 다음카카오가 2005년 이후 포털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은 네이버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다만, 네이버 독주를 견제하는 변화의 바람은 불 것이라는 의견은 적지 않았다.

다음카카오는 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다음카카오 데이원'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합법인의 공식 출범을 알렸다.

다음카카오를 보며 두 번째 드는 생각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카카오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부랴부랴 모바일 메신저를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2011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2011전시회에서 삼성판 카카오톡인 ‘챗온(ChatOn)’을 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수천만대 팔릴 스마트폰 ‘갤럭시’시리즈에 챗온을 탑재하면 금방 카카오톡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만약 그때 삼성전자가 카카오톡과 엇비슷한 서비스를 내는 데 급급하지 않고 카카오톡에 지분 투자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지분 10% 어치라도 샀더라면.

당시 카카오톡은 국내 사용자 수는 급격히 늘었지만, 뾰족한 비즈니스 모델은 없어 투자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김범수 카카오톡 의장은 투자자들을 찾지 못해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김정주 넥슨 사장 등 지인들을 끌어들였고 중국에서 무섭게 성장했던 텐센트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텐센트는 2012년 4월 카카오톡에 720억원을 투자해 김범수 의장에 이어 카카오톡 2대 주주(지분 13.3%, 합병법인 9.9%)로 올라섰다. 텐센트의 지분가치는 불과 2년 만에 최소 5000억원, 투자금의 6배 넘는 잭폿이 됐다. 또 텐센트 측 인물을 다음카카오 이사회 멤버로 추대해 합병법인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챗온'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IFA 2011에서 선보였다.

삼성전자 사정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거대한 소프트웨어 인력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부문 연구원들이 카카오톡 같은 서비스는 바로 만들 수 있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고 한다. 서비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돌파력, 민첩성, 위기 대응 능력과 같은 벤처 정신과 결합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당시 삼성전자는 특유의 관료체제 약점은 간과했다. 삼성전자가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답습하지 않고 지분을 투자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택했더라면, 최근 위기를 맞은 갤럭시의 대응카드는 몇 가지 더 있었을 것이다.

삼성전자 챗온은 삼성 그룹 내부 메신저로 잘 쓰고 있다고 한다. 내부에서는 챗온 덕분에 메신저를 통한 정보 유출 을 막을 수 있는 등 보안 이슈도 해결했다는 것으로 자기 위안도 삼는 모양이다. 다음카카오가 출범 직전인 9월 30일 삼성전자는 20년간 사용해 온 사내(社內) 문서 작성 프로그램 ‘훈민정음’을 버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MS워드’를 사용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다음카카오가 네이버를 제치고 한국인터넷 1위의 자리를 탈환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챗온의 운명은 훈민정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