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엔화 약세를 활용해 시설투자에 나서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의 기계나 장치, 공장 설비 등 고정자본을 수입해 설비 투자에 나서는 중소기업들에게 현재 8% 수준인 관세를 한시적으로 최대 절반까지 깎아주는 방안 등이 검토된다. 엔화 약세로 가격이 싸진 것을 이용해 기업에게 세제나 정책금융으로 지원해 투자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또 엔화 약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수출 중소기업들을 위해 환 변동 보험료를 일부 지원하고 환 위험 관리 지원을 강화하는 등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1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와 이 같은 내용의 엔화 약세 대응 방안을 마련해 이달 안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엔화 약세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이 엔화 약세를 투자 확대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엔저 대응 방안은 주로 수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어 위주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엔저 현상을 방어하기에 급급해 하지 말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내라고 직접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총리는 지난 30일 '핫라인 참여' 기업인 40여명과의 간담회에서 최근의 엔저 추세에 대해 "기자재(설비투자) 가격이 하락하는 부분이 있으니 이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설투자를 위해 외화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에 대해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해 시중보다 낮은 금리로 외화자금을 빌려주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외평기금을 활용한 외화대출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7월에는 지원한도를 100억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확대했다.

정부가 이처럼 엔저 현상을 투자 확대로 연결시킨 것은 당장 엔저에 대응할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비교해 간접 계산해야 하는 재정환율이다. 원·엔은 원·달러 처럼 직접 거래되는 시장이 없어서다. 이 때문에 원·달러 환율과 달리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일각에서는 외환당국이 직접 달러로 엔화를 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 외환당국이 노골적으로 환율에 개입하는 모양세가 되기 때문에 부담스럽다. 또 엔화를 매입한다고 하더라도 엔·달러 시장의 거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환율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들의 투자 부진이 심각한 것도 배경이다. 지난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8월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10.6% 감소하며 11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처럼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엔저를 활용해 투자 인센티브를 준다면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투자 인센티브를 준다고 기업들이 얼마나 투자를 늘릴 수 있을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투자를 하는 이유는 경기 전망이 좋을 때 하는 것이지 가격이 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투자를 고민하고 있는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할 수는 있어도 이번 대책으로 투자가 크게 늘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