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팹리스 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설계전문(팹리스) 산업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과 대만에 이어 점유율이 세계 3위에 올랐고, 팹리스 상위 20위 기업 안에 2개 중국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적극 지원한 결과다.

반면 한국 팹리스 회사들은 상황이 정반대다. 정부의 지원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할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제조 전문 회사)가 턱없이 부족해 정체하거나 뒤쳐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에 효율적인 대응전략을 강구할 때”라고 지적한다.

◆ 중국 팹리스의 飛翔

중국 팹리스 업계는 활황세다. 산업연구원은 28일 ‘존재감 더 높이며 약진하는 중국 반도체산업’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중국의 반도체 설계 분야 매출액은 57억600만달러로 전년보다 28.1% 급증했다. 매출액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은 6.0%에서 7.0%로 늘어 3위를 기록했다.

산업연구원 제공

중국 기업들은 상위 2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하이스와 스프레드트럼은 각각 12위와 16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회사는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팹리스 산업 급속성장의 발판은 정부가 닦았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시장이다. 그러나 자급률은 낮아 공급 대부분을 해외기업에 의존했다. 지난해 중국 반도체 수입액은 원유 수입액을 능가하는 최대 수입제품이다.

중국 정부는 팹리스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방향은 한국이 꽉 잡은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팹리스가 활동하는 주무대인 시스템 반도체로 잡았다. 파운드리 계약부터 설계 툴, 인력확보 등 생태계 대부분에 지원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모두 중국 내에서 생산된 것만 담도록 하는 보호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기술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칭화대와 중국과학원, SMIC가 대세 기술인 20나노 공정 공동개발에 나섰다.

산업연구원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계획은 현재 한국과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편제된 세계 반도체 판도에 일대 변화를 예고하는 조치다”고 내다봤다.

◆ 벽에 부딪힌 한국 활로 없다

반면 국내 팹리스 산업은 끊임없이 쇄락의 길을 걷고 있다. 10년전만 해도 국내 팹리스 회사들을 한국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이끌 첨병으로 여겼다. 실리콘웍스, 코아로직등 회사들은 당시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한국 팹리스 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7억4400만달러로, 전년보다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같은 기간 2.3%에서 2.1%로 줄었다.

국내 한 팹리스 회사 사장은 “단일 제품만으로는 성장하기에 무리다”며 “국내 팹리스 회사들이 LED 램프를 비롯해 반도체와는 다른 영역의 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지난해 150개 국내 팹리스 회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3분의 2가 ‘정부 지원정책’을 가장 미흡한 점으로 꼽았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높고, 수준 높은 기술력과 인력, 긴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없이 영세 기업이 홀로 성공할 수 없는 영역인 셈이다.

팹리스에게 핵심인 자국 파운드리 회사가 적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세계 시장 4위 팹리스 회사인 대만 미디어텍은 같은 대만 파운드리 회사 TSMC와 상호보완하며 본격적인 부흥기를 맞이했다. 미디어텍은 이전까지 일본에 제조를 맡기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005930)가 파운드리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로지 제조만을 담당하는 순수 파운드리가 아니다. 유일하게 파운드리에 집중했던 동부하이텍은 중국 회사에 팔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설계를 해도 제조를 맡길 회사가 없어 해외에서 어려운 협상을 계속 이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산업연구원은 국내 팹리스 회사들이 중국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 연구위원은 “중국에 자리 잡은 각종 연구소나 현지기업을 활용해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외주개발, 마케팅 자원 등에 투자하면 중국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