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29일 연 매출 1000억원 미만중 경기침체 업종 등 4대 중점 지원분야에 속한 130만 중소상공인에 대해 내년말까지 세무조사를 유예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은 국세행정이 경제활성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공약인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기조에서 한걸음 후퇴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증세 없이 지하경제양성화와 세출구조조정으로 복지세원을 마련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으나 무리하고 강압적인 징세행정으로 기업들의 불만을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아왔다. 지하경제에 만연한 탈세를 막아 세수를 확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지만 큰 효과도 못거두면서 과도한 세무조사로 경제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이 비등했던 것이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90%가 "새 정부의 세무조사 강화 움직임과 관련해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번 국세행정의 변화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취임으로 이미 예고됐었다. 내정자 시절부터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건 최 부총리는 지난 7월 인사청문회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FIU(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공유 등 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해야지 과도한 세무조사는 지양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었다. 세수결손 우려와 관련해서는 "경제가 좋아지면 필요한 세수가 충당되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은 경제를 회복시켜 세금을 걷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보다는 경제활성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였다.

◆ '세수확보'에서 '경제활성화'로…국세행정 기조 대전환

국세청은 이날 130만개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내년말까지 유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경제활성화 노력을 세정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130만개 업체는 전체 사업자(법인 52만개, 개인 456만개)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4대 지원분야는 경기침체에 따른 사업애로 업종, 업황이 부진한 지역특성 업종과 산업, 경제성장견인 산업, 일자리창출기업 등이다. 대기업 계열법인, 세법질서 문란자, 구체적 탈세혐의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 공약 중 하나였다. 국세청에 '지하경제양성화 추진기획단'을 신설하고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도 만들었다. 지방청 조사·징수 인력은 500명을 늘렸다. 지하경제 양성화의 대상이 되는 주요 탈세분야로는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의 차명계좌·현금거래 탈세, 가짜석유 자료상 불법사채업 등 세법·경제질서 문란자, 대기업·대재산가의 비자금조성, 변칙거래 등 음성적 탈세, 국내 재산의 불법 해외유출, 해외소득 은닉 등 역외 탈세로 지적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를 국세청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같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추가로 거두는 세수 목표를 작년 2조7000억원, 올해 5조5000억원, 내년 6조원, 2016년 6조3000억원, 2017년 6조7000억원 등 총 27조2000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 요란한 세무조사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목표를 달성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두배 이상 많은 목표를 채워야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 정부 "지하경제 양성화, 계획대로 추진 중…용어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언급 자제"

정부는 올해들어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단어 자체를 꺼리고 있다. 기재부는 작년 9월 발표한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서 '재정건전성 관리방안-세입기반 확충' 항목에 비과세·감면 정비와 함께 지하경제 양성화를 다뤘으나, 이번 달에 발표한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 대신 '세원투명성 강화'라고 썼다. 국세청도 지하경제양성화 추진기획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하경제양성화 자문위원회는 다른 자문조직과 기능 중복을 이유로 '국세행정개혁위원회'로 통합할 예정이며 지하경제 양성화 관련 내용은 '세무조사' 분과에서 다루기로 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으며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는 "작년 목표 2조7000억원은 달성했고 제도개선 사항들을 완료했다"며 "올해 목표는 집행되고 있는 단계로 세수 실적이 나와야 통계 분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 용어가 부정적 이미지로 비춰져서 세원투명성 강화로 대체한 것이라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