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일 태평양과 인도양의 관문(關門)에 위치한 싱가포르의 주롱(Jurong)섬. 엑손모빌·보팍·호라이즌 등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 업체가 입주해 있는 이곳에서 현대건설이 2009년 6월 첫 삽을 뜬 해저(海底) 유류비축기지(Jurong Rock Cavern Project)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공사는 주롱섬 앞바다에서 130m 내려간 해저 암반 지역에 150만㎥(약 930만배럴) 규모의 석유 저장고를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 석유 저장량만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다섯 척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다.

총 사업비 7억2500만달러(약 7500억원)가 투입된 '주롱 해저 유류비축기지'는 지하 1~2층으로 구성된 10여개의 터널에 각종 운전시설과 석유 저장탱크(길이 340m×2개) 5기(機)가 들어가 있다. 전체 터널(폭 20m×높이 27m) 길이만 11.2㎞에 달해 일반 토목 공사보다 훨씬 복잡한 첨단 공법이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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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사의 최대 적(敵)은 지하 암반수였다. 공사 현장에서 곧바로 110m를 올라가면 바다가 나오기 때문에 암반 속에 스며든 바닷물이 작은 틈새를 타고 공사 기간 내내 터널 안으로 들어왔다. 현대건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파 작업으로 뚫은 동굴 벽면에 '그라우팅(grouting)' 작업을 했다. 로봇 팔 모양 '점보 드릴'로 직경 4.5㎝의 작은 구멍을 암반 속 15~20m까지 뚫은 뒤 시멘트를 고압으로 분사해 주변 작은 틈새에 모두 채워넣은 것이다.

이규재 현대건설 현장소장은 "암반 속 해수의 압력이 10바(bar·수심 100m에서 전해지는 압력) 정도여서 터널의 천장 곳곳에서 바닷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며 "이런 수압을 이기려면 15~25바 정도의 압력으로 시멘트를 쏘아야 한다"고 말했다.

웬만한 충격에는 깨지지도 않는 암반이지만, 폭약을 이용해 터널을 여러 개 뚫다 보면 동굴이 무너져 내릴 위험도 적지 않다. 현대건설은 그 보완책으로 '숏크리트(shotcrete)'와 '록볼트(rock bolt)' 공법을 택했다. 먼저 발파 작업으로 깨진 돌덩이를 파내고 나서 벽면에 경화제를 섞은 콘크리트를 5~15㎝ 두께로 뿌린다. 이어 터널 천장과 벽면에 길이 5m의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볼트를 2~3m 간격으로 박아 볼트가 바위들을 잡아당겨주는 역할을 하도록 했다.

해저 석유 저장고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석유 증기(oil vapour)이다. 기름이 증발하면서 생긴 석유 증기가 시설물 안으로 퍼져 직원들이 질식하거나 자칫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그 방지책으로 현대건설은 인공 수막(워터 커튼) 공법을 통해 저장탱크에서 새어나온 석유 증기가 다른 터널이나 운영 시설로 퍼지지 않도록 했다.

즉, 저장탱크 옆에 작은 터널(폭 5m×높이 6m)을 만들고 여기서 다시 수직으로 10m마다 작은 구멍(지름 10㎝×깊이 70m)을 뚫어 물을 채워주면 암반 틈새를 따라 물이 모세혈관처럼 퍼져 석유 증기를 동굴 주위에 가두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유류비축기지 프로젝트는 현대건설이 바다 밑 암반에서 처음 수행한 고난도 공사"라며 "해저 130m 암반층에서 섭씨 32도의 온도를 견디며 5년 넘게 작업해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뜻이 더 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