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비(非)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 채권(수쿠크) 도입 논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2011년 수쿠크 도입 논의가 종교적 문제로 무산된 이후 지금까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수쿠크 도입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세계 금융위기로 해외 자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자 오일달러가 풍부한 중동지역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수쿠크 도입을 추진했다. 외형으로는 실물 거래이지만 실제로는 채권거래인 수쿠크에 대해 취득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을 감면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수쿠크는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돈을 빌린 사람이 투자자에게 이자 대신 부동산 임대료나 배당을 주는데, 임대료나 배당에는 각종 세금이 붙는다. 이런 비용이 발생하는 수쿠크는 다른 외화채권 발행보다 불리하기 때문에 조세 특례를 통해 수쿠크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쿠크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종교적 문제로 무산된 이후 지금까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이슬람 금융사 매이뱅크.

하지만 국회에 제출된 법 개정안은 선거를 앞두고 종교계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당시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는 수쿠크를 통해 테러 자금이 유입될 수 있고 수쿠크를 통한 실물 거래에만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고 반대했다. 이후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진정되며 다시 해외 자금 조달이 용이해졌고 수쿠크 도입 논의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금융산업 발전과 다양한 자금 조달을 위해 수쿠크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은 “우리 금융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다양한 자금 조달 창구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에서 수쿠크 도입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이슬람 금융에 대해 막연하게 형성된 배타적 인식을 개선하고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수쿠크 도입을 위한 정책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무역투자청에 따르면 이슬람 금융 자산이 전 세계 금융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정도로 낮은 수준이지만, 연평균 15~20%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 세계 이슬람 금융 자산은 2009년 8470억달러에서 2012년에 1조4600억 달러로 늘었고, 올해 말에는 2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쿠크 도입은 우리나라의 외화 조달원(源) 다변화에 도움이 된다. 이슬람 지역인 중동은 풍부한 오일달러를 보유하고 있어 유용한 외화조달원으로 꼽힌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자금을 주로 빌려썼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 자금 창구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중동 지역 국가들이 사회간접자본 등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여기에 우리 기업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일부 중동 국가들은 자국 인프라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이슬람은행이나 수쿠크를 통한 자금 조달을 의무화하는 등 이슬람 금융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수쿠크 기반이 없다면 중동 지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사업 수주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수쿠크 도입을 위해서는 인식 개선과 함께 법·제도 마련도 필요하다.

가장 먼저 지난 2011년 정부가 내놓은 법 개정안과 같이 수쿠크 방식으로 거래할 때 붙는 각종 세금을 면제해주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영국과 싱가포르, 아일랜드 등은 법 개정을 통해 수쿠크에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이슬람 금융을 연구해 온 강대창 박사는 “수쿠크는 기존 자산유동화 방식과 유사하기 때문에 금융감독 측면을 고려해 ‘자산유동화법’이라는 틀로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적합하고, 수쿠크가 실물 자산을 거래한다는 점을 고려해 은행 업무의 범위를 실물 거래로 확대하는 은행업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