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은 전세계의 저성장·저물가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진국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합의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의 성장에 기대던 세계경제가 신흥국의 성장세가 둔화하자, 선진국의 적극적인 통화완화 정책으로 수요 부진을 극복해야 한다며 선진국의 돈풀기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지난 20일부터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G20은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취약한 수요에 직면해 있다”며 “선진국들의 통화정책은 경제 회복을 견인하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디플레이션 압력을 시의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G20은 선진국의 이 같은 통화정책을 통해 “우리는 보다 폭넓고 견고한 성장을 달성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선진국 통화정책의 정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일본, 추가적인 양적완화 탄력 받을듯…엔저 심화 우려

G20의 이 같은 진단과 합의로 인해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준비중인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 한결 줄어들게 됐다. 일본은 소비세 인상의 여파로 2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기 대비 6.8%(연율기준) 감소하면서 추가적인 경기 부양책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일본의 과도한 양적완화 정책에 부작용을 우려하는 입장이다. 가뜩이나 원엔환율이 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계속되는 엔저 현상으로 골치를 썩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추가적인 확장적 통화정책이 펼쳐질 경우 엔저 현상이 두드러져 수출의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내리고 원화 가치가 오르면 해외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우리 수출 제품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추가적인 경기 부양책을 내 놓으면 엔화는 한층 더 약세를 보일 것이고 수출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지나친 양적완화는 전세계 불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국제사회가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환 당국 입장에선 원화와 엔화간의 직접적인 교환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 직접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게다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강달러 현상이 시작되면서 단기자금이 우리 시장에서 빠져나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적극적인 외환정책을 펼치기도 쉽지 않다. 최 부총리도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원엔 환율은 재정환율(환율을 산정할 때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달러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 난감해진 이주열 총재…추가 금리인하 압력 더 세질 듯

G20이 수요부진을 우려하며 확장적 통화정책을 지지하면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다소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연 2.25%로 동결한 뒤 브리핑을 통해 "소비자물가는 1.4%지만 근원물가는 2.4%를 기록하고 있어 현재의 저물가 현상은 공급적 요인에 기인하는 것"이라며 "수요 측면에서 기조적인 물가 상승 압력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통화정책 측면에서 근원 물가 동향을 주의깊게 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었다. 최 부총리가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며 수요 부진을 지적한 데 대해서는 "저물가 원인은 농산물이나 석유가격 하락과 같은 공급적 측면 때문이지 수요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

한은에 대한 추가 금리인하 압력은 더 세질 것으로 보인다. G20차원에서도 수요부진을 우려하며 확장적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엔화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한은이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이 총재는 세계경제 진단과 확장적 통화정책 등의 필요성을 강조한 1, 2세션 회의에서는 발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는 최 부총리는 G20을 통해 정책의 당위성을 인정받게 됐다. 최 부총리는 취임 이후 41조원 규모의 재정·금융 확장정책을 발표했고 지난 18일에는 올해보다 20조원이 늘어난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는 등 경기 회복을 위해 과감한 재정정책을 펼치고 있다.

G20은 이번 회의를 통해 “단기적인 경제상황을 감안해 재정정책 전략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하며 이를 통해 경제 성장 및 고용 창출을 지원하고 GDP 대비 부채 수준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