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은 2011년 6월 진행된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인수가로 주당 21만5000원을 제시했다. 당시 대한통운 주가는 10만원 안팎이었다. 경영권 프리미엄만 거의 100%를 얹은 셈이다.

CJ그룹이 이처럼 적극적인 베팅에 나선 이유는 삼성그룹 때문이었다. 삼성그룹은 본입찰 직전 포스코와 함께 대한통운 인수전에 나서기로 했다. 대한통운 매각전은 범 삼성가 오너간의 자존심 싸움이 됐고, 이 과정에서 과열 경쟁이 펼쳐졌다. 덕분에 금호그룹만 신이 났다. 워크아웃 중이던 금호그룹은 대한통운 매각을 계기로 숨통이 트였다.

CJ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 반응은 좋지 않았다. 5월만 해도 주당 10만원에 사도 너무 비싸다는 분석이 다수였는데 불과 한달 사이 인수금액이 두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지분율이 외국인 투자 심리를 말해줬다. 인수전 참여 전만 해도 26%대였던 CJ제일제당(097950)의 외국인 지분율은 17%선까지 떨어졌다.

◆ "외국인들, 현대차의 한전부지 인수에 대해 stupid, crazy!"

전문가들은 최근 삼성동 한전부지 인수전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10조원이 넘는 돈을 베팅한 것은 오너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해석된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의 NDR(자금 조달을 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기업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는 A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컨퍼런스 중에도 NDR을 개최한 기업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한전 부지 얘기만 했다"면서 "stupid, crazy와 같은 격앙된 표현을 쓰며 성토했다"고 강조했다.

홍콩에서 열리는 IT포럼에 참석하고 있는 한 기관투자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반응을 올렸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당초 한전부지 인수전에 관심이 없었거나 삼성전자가 가져갈 것이라고 봤던 것 같다"면서 "IT포럼인데도 모두들 한전부지와 현대차 이야기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는 스마트카 개발을 앞두고 테크 담당 애널리스트들에게 눈도장을 찍어놓는데는 성공한 셈"이라고 농담도 했다.

한전부지 개발을 현대건설이 아닌 현대엔지니어링이 맡을 것이란 관측은 현대건설(000720)주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오너 일가의 지분이 있어 현대엔지니어링 키우기에 나설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사견임을 전제로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는 합병으로 인해 일감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면서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글로비스는 많은 일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이에 따라 이번 인수전은 현대차그룹의 승리가 아닌 오너 일가의 승리라고 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해 현대건설이나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개연성은 있지만 아직 성급한 추측일 뿐이며 현대엔지니어링이 맡을 수 있는 공사 규모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상속 때문에 주가 하락 내버려둔다고?…이해 못하는 외국인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상속 구도나 자존심 싸움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삼성전자(005930)만 해도 최근 들어선 주가 하락을 방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설(說)이 끊이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상속비를 절감하려면 주가 하락이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지분 3.38%를 물려받을 경우 상속세율 50%에다 최대주주 20% 할증을 적용받게 되는데, 지난 6월 이후 주가 하락으로 상속세는 8000억원가량 줄었다(4조4000억원→3조6000억원).

SK도 비슷한 상황이다. SK는 SK그룹의 지주회사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 보유주식이 1만주(0.02%)밖에 없다. 다만 최 회장은 SK C&C의 최대주주이며, SK C&C가 SK의 최대주주다. 추후 SK와 SK C&C의 합병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투자자가 많은데, 이런 이유에서다. 당연히 최 회장 보유주식이 많은 SK C&C 주가가 오르고 SK 주가가 하락하는 편이 지배구조를 장악하는데 유리하다.

이때문인지 외국인은 양사 합병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올 들어 SK를 팔고, SK C&C를 사들이는 모습이다. SK의 외국인 지분율은 연초 30%대에서 최근 26%대로 내려앉았고, SK C&C 지분율은 19%대에서 23%로 높아졌다.

애널리스트 출신의 B씨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상속이나 기타 이유 때문에 주가 하락을 방치할 수 있다는 우리의 설명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면서 "하지만 이제 한국 투자를 집행하는 매니저들은 상황을 꽤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 "상속 때문에 떨어질 것" 고정관념은 피해야

다만 개인투자자들은 지나치게 상속 구도를 고려하며 매매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기업 가치라는 것이 무조건 오너가 원한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자칫 상속 구도라는 개념을 너무 깊게 고려하면 실제 기업 가치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투자자문사 대표이사는 "삼성전자가 아무리 위기라고 해봐야 분기당 5조원의 이익은 낼 것"이라며 "그렇다면 주가이익비율(PER)은 8.9배 정도가 되는데, 이만하면 그래도 가격적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삼성전자 주가가 떨어져야만 상속 작업이 완료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주식을 사지 않는 것은 다소 바보 같은 행동"이라며 "실제로도 120만원 밑으로만 가면 외국인이든 기관이든 삼성전자를 사들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투자자들이 K-OTC시장에서 삼성SDS를 '묻지마 매수' 수준으로 사들이고 있는데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나오고 있다. 삼성SDS는 주당 순이익이 5만원을 소폭 밑도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30만원 이상에서 거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