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로봇 제조사 '유진로봇'의 신경철(58) 대표는 "앞으로 로봇이 소프트웨어나 가전(家電) 산업은 물론 물류·의료 산업 등과 결합해 스마트폰 이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첨병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로봇산업협회 수석 부회장인 신 대표는 우리나라 로봇 산업을 이끈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1988년 유진로봇의 전신(前身)인 유진로보틱스를 세우고 30년 가까이 각종 산업·서비스용 로봇을 만들어왔다. 유진로봇이 개발했거나 출시한 서비스용 로봇은 현재 25종이 넘는다.

"로봇 제조 업체들은 그동안 로봇의 상품화보다는 기술 개발에 치중하는 경향이 컸어요. 최근에는 구글·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로봇 사업화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실제 서비스화에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유진로봇 신경철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본사 연구실에서 지난 2002년 출시된 어린이 교육용 로봇인 ‘페가서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 대표 뒤의 빨간색 로봇은 이달 초 독일에서 전자제품 전시회 ‘IFA 2014’에 소개된 노인 요양 도우미 로봇 ‘고 카트’다.

유진로봇의 대표 상품은 회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로봇 청소기 '아이클레보'다. 2005년 출시된 이 제품은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20만대가 넘게 팔렸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10% 정도지만, 우리나라에서 수출하는 로봇 청소기 중에선 40%가량이 아이클레보라고 신 대표는 설명했다.

이 제품은 2011년 독일 가전 전문지 '엠포리오 테슈트 마가친(Emporio Test Magazin)'의 성능 테스트에서 미국 아이로봇의 '룸바'를 포함해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당시 내비게이션 카메라를 달아 정확한 이동과 강력한 흡입력에 낮은 소음이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으면서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3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어요. 거대 글로벌 기업들에서 ODM(제조자 개발 생산) 납품 요청도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유진로봇은 원래 산업용 로봇을 만들던 회사였다. 신 대표가 서비스용 로봇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 닥친 IMF 외환 위기 때였다.

"공장들이 줄도산하면서 산업용 로봇 납품이 급감하고 로봇 회사의 80%가 문을 닫았어요. 우리 회사는 수출로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일반인들이 쓸 수 있는 로봇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도 망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속적인 기술 개발 덕에 유진로봇은 청소 로봇 외에 어린이 교육용 로봇 '아이로비'와, 분쟁 지역에서 군인을 대신해 폭탄 제거나 순찰 업무 등을 하는 군사용 로봇 '롭해즈' 등 서비스 로봇 10여종을 생산한다.

이달 초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전자 전시회 'IFA 2014'에 초청돼 제품 발표회를 하는 기회도 얻었다. 유진로봇은 요양원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각종 잔심부름을 해주는 '고카트'를 선보였다. '사물 인터넷' 기술을 적용해 로봇이 요양원을 다니면서 문을 열거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관리자의 스마트폰에 긴급 상황도 알릴 수 있다. 신 대표는 "IFA 발표 이후 스웨덴과 독일 등에서 고카트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의 고급 노인 요양 시설 건설사와도 협력해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로봇이 공존(共存)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애완견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훈련할 수 없지만, 로봇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어요. 로봇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동반자'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