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호 기자

‘KB금융 최고경영자는 끝이 좋지 않다’는 징크스는 이번에도 현실이 됐다. 황영기 초대 회장, 회장 직무대리를 잠깐 했던 강정원 전(前) 국민은행장, 어윤대 전 회장 모두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고 임기 중에 물러났거나 연임을 포기했다. 임영록 전 회장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받았으나 자진 사퇴하지 않고 버티다가 결국 18일 자정을 넘어 이사회에 의해 해임됐다. 임 전 회장은 이사회에서 해임된 첫 번째 KB금융 수장으로 남게 됐다.

임 전 회장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부당하게 인사에 개입했고 수장으로서 감독 업무를 태만히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지만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임 회장과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간의 권력 다툼에 있다.

전산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로 전환할지는 순전히 내부에서 다룰 일인데 이 전 행장은 이 문제를 금융당국이 해결해 달라고 떠넘겼다. 이 전 행장은 중대한 문제가 있는데 내부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이로써 KB금융(105560)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KB금융의 의사결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룹의 1인자(지주사 회장)와 2인자(은행장)가 각각 다른 경로를 통해 이른바 낙하산으로 내려오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전 행장은 지난달 말 지주사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하거나 사퇴 의사를 밝힐 때 임 전 회장에게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 은행장이 지주사 회장을 인사권자라고 생각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다.

지금까지 정권 핵심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KB금융 수장 자리를 전리품 처럼 챙겨왔다. 형식적으로 KB금융 회장은 KB금융 사외이사들이 뽑고 회장은 행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실제론 회장과 행장 모두 ‘윗선’이 낙점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새로운 사람을 내려 보내기 위해 전임자를 무리하게 쫓아낸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KB금융 이사회가 임 전 회장을 해임하면서 이제 차기 회장과 행장을 뽑는 일이 남았다. 전문성 없는 사람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면 어떤 폐해가 발생하는지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다. 차기 회장과 행장이 또 낙하산으로 내려오면 KB금융의 미래는 물론 국내 금융산업의 미래도 없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KB사태가 낙하산 문화를 근절하고 금융산업 발전의 밀알이 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