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작권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콘텐츠 공유와 개방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죠."

미국의 비영리단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의 라이언 머클리(47·Merkley·사진) 대표는 16일 "엄격한 저작권의 빗장을 풀고 콘텐츠를 공유하는 창작자들이 많아지면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머클리 대표는 이날 열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가 주최한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訪韓)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의 대표는 판사 출신의 저작권 전문가인 윤종수 변호사가 맡고 있다.

2001년 설립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과도한 지적재산권은 창작물이 공유되는 것을 제한해 창작물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게 막는다'고 본다. 이에 미리 사용 조건을 제시해 저작권자에게 묻지 않고도 창작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오픈 라이선스'인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을 만들어 배포하는 비영리 단체다.

사진·동영상·문서·소프트웨어 등에 이 CCL 마크가 붙어있으면 저작권자에게 별도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 이미지 공유 사이트 '플리커(Flicker)' 등이 바로 CCL 규약을 적용한 대표적인 서비스다. 이 단체는 저작권을 뜻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나 '모든 저작권 보호(All rights reserved)'란 표현 대신 'CCL' 마크나 '카피레프트(copyleft)'란 용어를 확산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머클리 대표는 최근 아프리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예를 들어 콘텐츠 공유의 가치를 설명했다. 그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관한 주요 연구 논문들이 CCL 규약에 따라 논문을 배포하는 '오픈 사이언스 저널'에 실렸다"며 "많은 연구자가 이 논문들을 무료로 접할 수 있어 에볼라 신약 연구개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CCL 규약은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사용되며 사용자는 10억명에 달합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ttee)는 회원국 공공기관들이 보유한 콘텐츠에 대해 CCL 사용을 의무화할 계획도 추진 중입니다."

머클리 대표는 "과도한 지적재산권은 창작물의 가치가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저작권자가 미리 사용 조건을 달아서 콘텐츠를 내놓으면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출처를 밝혀야 한다' '영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콘텐츠를 변형해서는 안 된다' 등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달아서 공개할 수 있다. 머클리 대표는 "같은 콘텐츠라도 CCL 마크를 달아서 공유할 수도 있고, 판매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머클리 대표는 캐나다의 워털루 대학에서 사회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에는 줄곧 '기술과 공유'의 접점에서 일해왔다"고 소개했다. 캐나다 토론토시가 보유한 공공정보를 시민과 공유하는 '오픈데이터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2010~2013년은 공개 인터넷 브라우저 '파이어폭스'를 개발하는 미국 모질라재단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했다. 그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누구나 앱(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자가 될 수 있다"며 "조만간 이런 모바일 환경에서 CCL을 어떻게 잘 구현할지 연구하는 팀을 조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