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국제부장

가끔 딸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지인들의 반응을 즐긴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올리면 지인들은 즐거워하며 ‘좋아요’를 누른다. 개인사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공개하는 나 자신이 적당한 노출증에 걸린 환자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달콤한 반응들 때문에 이따금 글을 올리게 된다. 그래놓고 스스로 자위한다. 딸이 성년쯤 됐을 때, 이 페이스북을 보여주며 “네가 엄마 아빠뿐 아니라 엄마, 아빠 친구들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받고 큰거야”라고 말해줄 거라고.

사진도 적극적으로 올리려 했다가 반대에 부딪혔다. 아내는 “딸이 자라는 과정도 사생활인데, 나중에 커서 아빠가 자기 사생활을 노출했다고 하면 어쩔꺼냐”고 말했다. 요컨대, 딸 아이의 사생활을 아빠가 동의 없이 노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딸이 커서 나중에 아빠가 인터넷에 올린 자신의 기록을 지워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요즘은 원치 않는 기록이나 노출의 삭제를 요구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지난달 31일에 애플의 ‘아이클라우드’가 해킹되면서 제니퍼 로렌스, 케이트 업튼, 커스틴 던스트 등 미국 유명 연예인 100여명의 알몸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다. 이들은 단순한 ‘스캔들’로 넘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제니퍼 로렌스는 “사생활에 대한 명백한 침해행위”라며 “사진 유포자에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케이트 업튼도 “강력한 법적 조치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알몸 사진을 찍어 보관한 이유야 알 수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기록’들이 본인의 동의 없이 대중에 공개되는 것은 범죄행위라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인지 미 연방수사국(FBI)은 해킹범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고 인터넷 기업들은 스타들의 알몸사진이 검색에서 노출되지 않게 막았다. 해킹범도 잡고, 이들의 알몸사진을 퍼 나르고 찾아보려는 네티즌을 막기 위해서다.

딸 아이의 문제나 미국 연예인의 알몸사진이나 크게 보면 ‘잊힐 권리’에 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잊힐 권리는 인터넷에 떠도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삭제해 타인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게 하는 권리다. 올 5월 유럽연합의 최고 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가 잊힐 권리를 인정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찬반 논쟁이 벌어지는 상태다.

실제로 트위터는 유가족이 고인의 사진과 동영상 삭제를 요청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검토키로 했다. 구글은 삭제 요청을 검토하는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검색엔진 ‘빙’에서 유럽지역에 한 해 잊힐 권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잊힐 권리는 대개 디지털 소비자에게 보장돼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위키피디아’의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는 잊힐 권리가 “비도덕적이고, 심각한 정보검열이 우려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잊힐 권리를 강조하다 보면 정부기관이나 거대 인터넷 기업들이 정보를 마음대로 조작,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딸 아이의 성장사나 스타들의 알몸사진을 디지털화된 ‘기록’으로 보면 이런 가정도 가능할 것 같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가고 나서 딸 아이의 성장사는 한국의 보통 가정의 일상을 보여주고, 스타들의 알몸사진은 미국 배우들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풍속사의 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잊힐 권리에 대한 찬반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개인의 즐거웠던 기억이나 고통이 먼 훗날 역사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점. 잊힐 권리의 적용 범위와 한계를 논의할 때 같이 고려해야 할 부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