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로부터 대안을 찾으려는 것은 '남의 사진을 보고 내 얼굴'이라고 하는 격입니다."

고려대 장하성(61) 교수는 11일 '양극화 문제'를 이슈화시킨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분석이 한국 사회엔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피케티가 양극화 심화를 입증한 핵심은 미국에서 지난 100여년 동안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렀다는 것이다. 주식을 투자하거나 금융 이자소득을 받는 사람들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기에, '자본가는 더 부유해지고, 근로자는 더 가난해지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우리 현실에 피케티가 분석한 기준을 적용하면 오히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주식, 채권, 예금, 부동산 등에 대한 수치를 구해 각각 계산해보면, 1977년 이후 2012년까지 주식 수익률은 경제성장률보다 연평균 0.5% 높았고, 채권 수익률은 0.3% 낮았다. 은행 예금 수익률은 3.4% 낮았고, 부동산(1987년부터 통계 있음) 수익률은 실질 성장률보다 6%가 낮았다. 장 교수는 "이는 우리가 미국 등과 달리 자본 축적이 거의 되지 않은 신흥국이기 때문"이라며 "현실이 다른 상황에서 이뤄진 피케티의 문제 진단과 대안에 우리가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기업의 몫이 너무 커져서 발생

장 교수는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오히려 "고장 난 소득분배 장치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근로자가 각자의 몫으로 나눌 때 기업의 몫이 너무 커지는 1차 소득분배 실패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피케티가 말하는 1차 분배를 갖고 다시 투자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2차 분배의 불균형과는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11일 인터뷰에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양극화와 관련한 분석이 미국 사회에 근거를 두고 있어 한국 사회엔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 근거로 지난 1990년 GNI(국민총소득)에서 가계 소득 비중은 71.5%였지만, 2012년에 62.3%로 확 줄었다. 반면 기업 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 16.1%에서 23.3%로 늘었다. 줄어든 가계 소득만큼 기업 소득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장 교수는 최근 과도한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 방침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일부에서 법인세를 내는데 또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논란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개인은 소득세 내면서 재산세도 내고, 부가가치세도 내는데, 이런 것은 이중과세라고 하지 않는다"면서 "기업 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안 매기는 것은 이를 투자, 배당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는 전제를 깔고 하는 것인데, 우리 기업들은 경영주들의 쌈짓돈처럼 기업 이익을 쌓아만 놓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현대차 의존 벗어나야

장 교수는 한국 경제가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삼성전자, 현대차에 의존하는 경제 체질부터 바뀌어야 한다고도 했다. 장 교수는 "삼성전자의 경우 고용의 60%, 휴대폰 생산의 90%, 총투자의 90%가 해외에서 이뤄지며, 현대차는 생산의 50%, 투자의 31%가 해외에서 이뤄진다"면서 "이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성장하면 국가 성장에는 도움될지 모르나 국민 개개인의 삶의 성장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주목할 양극화로는 기업 간의 양극화, 재벌 간의 양극화라고 했다. 우리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선 제2의 삼성전자, 현대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다른 재벌들은 삼성과 현대차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격차만 현격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 원인에 대해 장 교수는 "재벌 스스로 갖고 있는 모순, 바로 '재벌의 재벌 따라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스템 통합(SI) 산업은 10대 재벌 중 9곳, 30대 재벌 중 22곳이 한다. 건설업은 10대 그룹 중 7곳, 30대 중 23곳이 하고, 물류 운송업은 10대 중 9곳, 30대 중 20곳이 한다. 장 교수는 "저마다 사업 구조가 내부 물량을 따내기 위한 '내부화'에 함몰돼 이런 식으로 사업을 키우니 어떤 회사도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지난 4년간 국내외 각종 통계를 정밀 분석해서, '현실에 근거한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대안'에 대한 저서를 곧 출간할 예정이다.


[장하성 교수는] 재벌 저격수로 앞장… "한국 경제 특수성 외면" 비판 받기도

장하성 교수는 1953년 광주광역시 출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부터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며 재벌 총수의 전횡 등에 대해 비판했으며, 삼성전자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장하성 펀드'를 만들어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벌였다. 지난 대선에서는 안철수 의원의 캠프에서 정책 싱크탱크인 '내일'의 연구소장을 맡아 활동했다가 최근 안 의원과는 정치적 결별을 했다. 소액주주 운동, 재벌 개혁 등 경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는 평가와 함께 대기업 중심의 고도성장을 추구해온 한국 경제의 특수성을 외면한 이상적인 재벌 개혁을 요구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피케티 논쟁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지난해 출간한 저서 '21세기 자본'을 통해 확산시킨 불평등에 관한 논쟁이다. 피케티는 "150년간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이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보다 더 많기 때문에 불평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反)피케티 진영의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은 완화되고 있으며, 성장을 위해서 불평등은 불가피한 문제"라는 논지로 피케티의 주장에 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