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더블린의 '블룸스 데이' 모임. 제임스 조이스의 두꺼운 소설책 '율리시스'를 낭독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아이슬란드를 떠난 후에도 우리 부부는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순례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핀란드, 덴마크들이다. 이곳에서 몇 주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일요일 풍경이었다. 화려한 것도 대단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소박하면서 조용한 모습이 더없이 좋았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의 일. 우리는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블룸스 데이 모임’이라는 작은 행사를 발견했다. 블룸이라면 아일랜드 출신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1922년에 발표한 소설 ‘율리시스’의 주인공. 이 소설은 더블린 시내를 배경으로 블룸을 포함한 세 사람이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 겪은 일을 그린 작품이다.

블룸스 데이 모임은 블룸이 걷던 길을 따라 가며 소설을 함께 읽는 행사였다. 우리는 시내에서 버스로 20분쯤 떨어진 행사 장소로 찾아갔다. 7명의 신사 숙녀가 먼저 와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어느 넓은 공원에 이르자 벤치에 앉았다. 저마다 가방에서 ‘율리시스’를 한 권씩 꺼내 들었다. 오늘 읽을 챕터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오래전 이곳은 바닷가였단다. 다들 바다를 바라보는 미스터 블룸을 상상하며 책을 함께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이스의 흔적은 더블린 시내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떤 이는 관광 상술이라고 비판하지만, 조이스가 더블린을 사랑했던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였다.

지금도 더블린은 제임스 조이스를 자랑한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더블린 사람들이 정말 그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그 어려운 소설을 제대로 읽기나 할까? 그러던 차에, 조이스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그저 좋아 보여, 우리는 좀처럼 알아듣기 힘든 아일랜드 억양인데도 한참을 듣고 서 있었다.

스코트랜드 에딘버러에서는 한 카페에서 ‘내일 운하 음악 산책이 있다’는 안내문을 봤다. 에딘버러에도 운하가 있었던가. 의아했던 나는, 무슨 퍼레이드쯤 되는 줄 짐작하고 행사장으로 찾아갔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어디론가 움직였다. 뒤를 따랐다.

그곳에는 정말 운하가 있었다. 작고 아담한 운하 곳곳에서 악대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듀오 중창단도 있었고, 재즈 밴드도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카페는 일종의 문화 동호인들 모임이었는데, 자신들이 이런 행사를 기획한 것이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운하에서 열린 '운하 음악 산책'은 독특한 행사였다. 참석자들은 함께 걸으며 여러 곳에서 펼쳐진 작은 음악회를 즐겼다.

조용하던 운하 주변으로 밴드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그곳에는 카페 회원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아이 둘은 물 위에서 자전거 튜브로 엮어 만든 보트를 몰고 있었다. 다음 주에 열리는 창작 보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시험 운전 중이라고 했다.

뭍에서는 아빠가 보트를 따라가며 코치를 하고 있었다. 튜브는 빵빵했다. 하지만 아이들 몸무게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의 몸이 반 이상 물속에 잠겼다. 아이들은 보트가 맘대로 나가지 않자 아빠한테 투정을 부렸다. “아빠 싫어”

한쪽에서는 무선조종 보트 경주가 한창이었다. 돛이 달린 모형 요트로 벌이는 시합이었다. 하지만 배는 물 위의 오리보다도 느렸다. 그 모습을 진지하게 지켜보는 젊은이들 표정이 더 재미있었다.

일요일 풍경의 압권은 덴마크의 코펜하겐이었다. 옛 왕궁 정원이었던 이곳 로젠보그 공원를 자전거로 돌아 볼 때였다. 넓은 잔디밭에서 잘생긴 젊은이들이 뭔가를 던지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손에 든 것은 장화였다. 편을 나누고, 거리를 재고, 기록까지 하는 모양이 자못 진지했다. 신기록이 나오면 환호가 터졌다.

운하 축제 중 하나로 열린 창작보트 대회에서 아이들이 자전거 고무 타이어를 엮어 만든 보트를 운전 중이다. 앞으로 나가지는 않고 물에 잠기기만 한다.

물어보니, 뜻밖에도 총각 파티라고 했다. 일행 중 한 명이 다음 주 결혼이란다. 장화 던지기는 그것을 축하하기 위한 이벤트라는 것. 아니나다를까 한 쪽에는 맥주가 쌓여있었다.

장화 던지기는 의외로 많은 나라에서 성행 중이었다. 영국의 작은 도시와 뉴질랜드의 농촌 마을에서도 이런 행사를 벌인다. 세계 장화 던지기 대회라는 것도 있다. 대회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첫 화면에 “어리석은 짓을 해보자”라고 써놨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장화던지기를 하는 젊은이들을 만났다. 자신들도 난생 처음 해보는 '총각 파티'라고 했다.

세상에는 잘 노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행 중에 알게 됐다. 놀이에는 화려한 장비도 기술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노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모두가 어린아이같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저 마음껏 놀려는 마음이 있었고,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하지만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