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31일 대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로 크게 파손된 KTX 33호기 모습. 무궁화호와 스치면서 열차의 옆 부분이 크게 파손됐다.

지난 8월 7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철도전문가들의 관심은 한 열차에만 쏠려 있었다. 주인공은 KTX 33호. 작년 8월 31일 대구역에서 발생한 열차 3중 추돌사고로 전열에서 이탈했던 열차다. KTX 33호는 사고가 난 작년 8월 31일부터 올해 7월까지 꼬박 1년 동안 긴 수리 과정을 거쳤다. 시운전과 정밀진단을 거친 KTX 33호는 지난달 7일 최종적으로 사용 가능 판단이 내려졌고, 다음날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KTX 33호의 복귀를 놓고 ‘왕의 귀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는 뜻이다. 사고에서 복귀까지 꼬박 1년이 걸린 KTX 33호의 복귀 과정을 되짚어봤다.

사고는 작년 8월 31일 오전 7시 14분 대구역에서 발생했다. 상·하행 KTX 열차와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가 3중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 플랫폼에 정차 중이던 무궁화호 열차가 출발신호보다 빨리 출발하면서 당시 역을 무정차 통과하던 서울행 KTX와 부딪힌 것이다. 이 서울행 KTX가 바로 KTX 33호였다. KTX 33호는 무궁화호 열차와 충돌한 충격으로 옆으로 기울었고 마침 맞은편에서 오던 부산행 KTX를 들이받았다. 부산행 KTX는 KTX 03호였다.

열차들의 운행 속도가 느려서 부상자가 4명 나오는데 그쳤지만 열차들의 피해는 컸다. KTX 03호와 KTX 33호 모두 큰 피해를 입었는데 특히 이중으로 충격을 받은 33호의 피해가 컸다. 33호는 서울방면 동력제어차부터 일반실까지 열차 8량이 탈선했다. 03호도 열차 2량의 측면이 찢어졌다.

KTX 33호기 주요 손상부위 모습.

사고가 난 2기의 KTX는 디젤기관차를 통해 경기도 고양에 있는 수도권철도차량정비단으로 이동했다. 정상적인 KTX였다면 몇 시간이면 갈 거리지만 장장 4일에 걸쳐 이동했다.

대형사고가 난 KTX 열차들이지만 그 중 KTX 03호는 불과 사고 일주일여만에 다시 운행을 재개했다. 추석 특별대수송기간을 맞아 급히 투입된 것이다. 아무리 급하다지만 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차량을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 KTX 03호가 사고 일주일 만에 다시 투입될 수 있었던 데에는 차량 바꾸기라는 비밀이 있었다.

사고 당시 부산방면으로 운행 중이던 KTX 03호는 부산방면 동력열차와 동력객차만 파손됐다. 나머지 차량들은 문제가 없었다. 반면 사고 당시 서울로 향하던 KTX 33호는 파손 정도가 심했지만, 뒷부분에 있던 동력열차는 문제가 없었다. 코레일은 사고 영향을 받지 않은 KTX 33호의 동력열차를 KTX 03호로 보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KTX 관계자는 “모든 작업은 매뉴얼에 따라 진행했고 KTX 03호도 현장에 복귀하기 전에 철저한 안전점검을 받아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KTX 03호기는 멀쩡한 차량들만 모은 덕분에 바로 운행이 가능했지만, 파손이 심한 부분만 모인 KTX 33호기는 정밀 수리가 필요했다. 피해차량만 13량에 수리가 필요한 손상부위는 425곳에 이르렀다. 코레일은 구체적인 수리 부위 등을 측정한 뒤 11월부터 본격적인 수리에 들어갔다. 5개 차량 234곳의 손상부위는 코레일이 자체적으로 수리를 진행하고, 나머지 8개 차량 191개소에 대한 수리는 외주를 맡겼다. 수리에 들어간 비용만 64억원에 달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KTX 도입비용을 감안하면 경제적인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KTX 33호기 수리 전 과정.

특히 철도업계에서는 KTX 33호기 수리를 코레일 차량정비단에서 직접 진행한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KTX가 종종 대파되는 사고가 있었지만, 열차 수리는 코레일이 아니라 제작사인 현대로템이 진행했다. 코레일이 자체적인 정비 시설이나 인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번에 처음으로 KTX 33호기 수리를 직접 진두지휘한 것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부분을 외주수리에 맡겼지만, 동력차 같은 핵심 차량은 코레일이 자체수리했다. 자체수리는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코레일 경영정상화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코레일은 “KTX 33호기 수리 전 과정을 기록해 놓고 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KTX 수리나 정비를 진행할 때 프로세스를 정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교육자료로도 활용가치가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KTX 33호는 올해 5월 21일 차체 수리를 끝내고 차량도장, 조립 등을 거쳐 7월 9일에 모든 수리 과정을 끝냈다. 이후 시운전과 정밀진단을 거쳐 8월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KTX 33호기 수리는 일반 수리와는 달리 거의 새로운 열차를 만들어내는 수준의 대대적인 수리 과정을 거쳤다”며 “다시는 대구역 사고 같은 어이없는 사고는 일어나면 안 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코레일과 철도업계의 KTX 정비·수리 수준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은 무시 못할 성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