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세제(洗劑)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수십 년간 분말 세제가 장악하고 있던 시장에서 액체 세제의 위상이 이에 버금가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일부 매장에서는 액체 세제가 더 많이 팔리는 점유율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1960년대 락희화학(현 LG생활건강)의 하이타이로 대표되는 분말 세제의 등장, 1990년대 초 제일제당(현 CJ라이온)의 비트와 럭키 한스푼 등이 촉발한 고농축 세제 전쟁에 이은 세 번째 큰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분말 세제가 네모난 빨랫비누에서 권좌를 이어받은 지 30여년 만에 액체 세제에 밀려나는 형국이다.

일부 유통망에서는 액체가 역전

3일 시장 조사 업체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 7월 말 누적 기준 국내 세탁 세제 시장에서 액체 세제의 비중은 46.2%를 기록, 53.4%의 분말 세제를 바짝 뒤쫓고 있다. 액체 세제의 비중은 2012년 36.2%, 지난해 말 41.4%에 이어 해마다 5%포인트 이상 늘어나고 있다. 점점 추세가 가팔라지고 있어 올해 말엔 5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홈쇼핑 등 일부 유통망에서는 이미 액체 세제가 분말 세제를 앞지르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홈쇼핑 등을 포함한 칸타월드패널의 조사에선 이미 2012년 액체 세제 비중이 50.2%를 기록, 49.4%에 그친 분말 세제를 앞서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기준 전체 세탁 세제에서 각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57.9% 대 40.1%로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마트에서도 변화 추세는 뚜렷하다. 이마트 조선행 매니저는 "20~30대 소비자의 구매가 늘면서 지난해 두 분야 비중이 5대5를 기록했다"며 "코너 규모는 2010년만 해도 8대2로 분말 세제가 컸지만 이제는 3대7 정도로 역전됐다"고 말했다.

국내 액체 세제 시장은 2008~ 2010년 LG생활건강, 애경 등 국내 대기업이 액체 세제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이에 앞서 2005년 피죤이 국내 최초 액체 세제인 '액츠'를 내놓고, 2006년 CJ라이온이 '비트' 액체 세제를 출시했지만 당시 시장에선 큰 호응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국내 대기업들과 함께 독일 브랜드인 헨켈이 2009년 퍼실로 국내에 진출하면서 성장에 속도가 붙었다. 업계 1위인 LG생활건강도 한입세제 등 신상품을 출시하며 시장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칸타월드패널 김지원 부장은 "세제 업체 간의 신제품 출시 경쟁이 붙으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깔끔하고 깨끗…선진국은 이미 대세

불과 5년여 만에 액체 세제가 시장을 양분한 배경으로는 우선 '깔끔하다'는 점이 꼽힌다. 과거 분말 세제의 가장 큰 단점이던 가루가 남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급격히 상승했다는 것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주부 나은빈씨는 "액체 세제는 세제 찌꺼기가 남지 않는 게 장점"이라며 "아이 옷이나 속옷을 빨 때 항상 액체 세제만 쓴다"고 말했다.

세제를 적게 쓰고도 세척력이 뛰어난 드럼세탁기 보급률이 2010년대 들어 30%를 넘어선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애경 관계자는 "액체 세제가 처음엔 세척력이 낮아 헤프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드럼세탁기 보급 덕분에 부정적 평가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국내 소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선진국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설명도 나온다. 1970년대부터 보급된 미국은 액체 세제가 전체 세제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2010년 액체 세제가 역전을 한 이후 80%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 60%를 웃돈다.

앞으로는 캡슐과 티슈 등 기능성 세제가 새롭게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이미 물에 녹는 티슈형 세제를 개발해 판매 중"이라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새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