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트롱홀드 테크놀로지는 '스마트 커피 원두 로스터'를 만드는 회사다. 이 업체의 커피 원두를 볶는 기계가 독특한 것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로 쓰는 안드로이드로 구동한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 OS를 쓴 덕분에 자신만의 커피 원두 볶는 법을 인터넷에 업로드해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고, 타인의 로스팅 기록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도 있다. 편의성만이 아니다. 이 회사 로스터는 2012년 세계 커피 바리스타 대회 '월드 컵테이스터스'에서 국내 1위를 차지한 바리스타 박수현씨로부터도 "사람이 하는 것보다 신뢰도가 높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3년간 최소 500대를 주문받아 창업 4년 만에 연 매출 3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2. 조이(ZOYI)는 스마트폰 전파를 분석해 매장 내 고객 동선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의 장점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이다. 조이는 매장에 설치해 고객 위치를 파악하는 장치를 직접 만든다. 투박하게 생긴 다른 회사 장비와 달리 조이의 센서 장비는 작고 예쁘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서비스 개시 7개월 만에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여러 업체가 조이의 고객 동선 파악 시스템을 사용 중이며, 전 세계 8개국 200여개 매장에 설치됐다.

전통 제조+SW 개발=스마트 제조업

하드웨어 제조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결합한 '똑똑한 제조업'이 부상하고 있다. 스마트 제조업을 이끄는 것은 신생 벤처기업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좋은 소프트웨어를 그 제품에 적용해 경쟁력을 배가(倍加)하고 있다.

스마트 하드웨어 벤처기업은 한국 제조업의 빠른 속도에 주목한다. 우종욱 스트롱홀드 대표는 "10분 안에 뛰어난 금형 장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롱홀드는 안정적으로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터를 만들 때까지 수십 차례 기계 디자인을 바꿔왔는데, 그때마다 중소 규모 제조업체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 대표는 "서울 고척동 우리 회사 주변의 금형 공장에서 얼굴에 기름 묻은 채 돌아다니는 평범한 분들조차 엄청난 베테랑"이라며 "우리가 뭘 원하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시원 조이 대표는 "하드웨어 벤처 기업은 실시간으로 디자인 개선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한국 제조 환경이 매력적"이라며 "중국이 제조 원가가 싸다지만 거기는 한국 벤처 수준에 맞는 소규모로는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플 前 CEO가 세운 회사와 협업

정밀 제조력을 인정받아 외국 소프트웨어 벤처와 하드웨어 개발을 협업하는 제조업체도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존 스컬리가 세운 회사로 유명한 헬스케어 업체 미스핏의 신체 활동 측정 장치 '샤인'은 국내 제조업체 비전스케이프가 만든다. 미스핏 샤인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수영·달리기·자전거 등 다양한 활동을 측정한다. 2~3주에 한 번 배터리를 갈면 될 정도로 효율이 좋은 데다 방수까지 된다. 김태원 비전스케이프 대표는 "미스핏도 처음에는 중국 업체들을 찾다가 안 돼서 우리를 찾아온 것"이라며 "결국 우리가 설계까지 일부 개입해 양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비전스케이프는 미스핏의 아시아 총판도 맡아 SK텔레콤과 함께 헬스케어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도 스마트 제조업 주목

벤처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스마트 제조업은 주목받고 있다. 벤처 투자 전문 조사 업체 DSJ벤처소스에 따르면, 미국의 벤처 투자사들은 지난해 제조업 벤처에 총 8억48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종전 최고액인 2012년의 4억4200만달러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가정 자동화(스마트홈)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미국 네스트는 올 1월 32억달러(약 3조2500억원)에 구글이 인수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스마트 온도 조절 장치와 화재 경보기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거액을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 벤처들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엔지니어 몇 명만 있으면 장비나 사무실 없이도 일정 수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제조업은 시작부터 돈이 많이 든다. 고가의 생산 재료 및 설비, 고도의 제조 과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하드웨어 벤처 업체 대표는 "업계 관심이 소프트웨어에 쏠려 있어 투자받기가 쉽지 않다"며 "하드웨어 전문 투자 펀드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