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트롱홀드 테크놀로지는 '스마트 커피 원두 로스터'를 만드는 회사다. 이 업체의 커피 원두를 볶는 기계가 독특한 것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로 쓰는 안드로이드로 구동한다는 점이다. 안드로이드 OS를 쓴 덕분에 자신만의 커피 원두 볶는 법을 인터넷에 업로드해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고, 타인의 로스팅 기록을 내려받아 사용할 수도 있다. 편의성만이 아니다. 이 회사 로스터는 2012년 세계 커피 바리스타 대회 '월드 컵테이스터스'에서 국내 1위를 차지한 바리스타 박수현씨로부터도 "사람이 하는 것보다 신뢰도가 높다"는 호평을 받았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3년간 최소 500대를 주문받아 창업 4년 만에 연 매출 3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2. 조이(ZOYI)는 스마트폰 전파를 분석해 매장 내 고객 동선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의 장점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이다. 조이는 매장에 설치해 고객 위치를 파악하는 장치를 직접 만든다. 투박하게 생긴 다른 회사 장비와 달리 조이의 센서 장비는 작고 예쁘다.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서비스 개시 7개월 만에 아모레퍼시픽을 비롯해 여러 업체가 조이의 고객 동선 파악 시스템을 사용 중이며, 전 세계 8개국 200여개 매장에 설치됐다.
◇전통 제조+SW 개발=스마트 제조업
하드웨어 제조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결합한 '똑똑한 제조업'이 부상하고 있다. 스마트 제조업을 이끄는 것은 신생 벤처기업들. 이들은 단순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좋은 소프트웨어를 그 제품에 적용해 경쟁력을 배가(倍加)하고 있다.
스마트 하드웨어 벤처기업은 한국 제조업의 빠른 속도에 주목한다. 우종욱 스트롱홀드 대표는 "10분 안에 뛰어난 금형 장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롱홀드는 안정적으로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터를 만들 때까지 수십 차례 기계 디자인을 바꿔왔는데, 그때마다 중소 규모 제조업체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 대표는 "서울 고척동 우리 회사 주변의 금형 공장에서 얼굴에 기름 묻은 채 돌아다니는 평범한 분들조차 엄청난 베테랑"이라며 "우리가 뭘 원하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시원 조이 대표는 "하드웨어 벤처 기업은 실시간으로 디자인 개선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한국 제조 환경이 매력적"이라며 "중국이 제조 원가가 싸다지만 거기는 한국 벤처 수준에 맞는 소규모로는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플 前 CEO가 세운 회사와 협업
정밀 제조력을 인정받아 외국 소프트웨어 벤처와 하드웨어 개발을 협업하는 제조업체도 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존 스컬리가 세운 회사로 유명한 헬스케어 업체 미스핏의 신체 활동 측정 장치 '샤인'은 국내 제조업체 비전스케이프가 만든다. 미스핏 샤인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수영·달리기·자전거 등 다양한 활동을 측정한다. 2~3주에 한 번 배터리를 갈면 될 정도로 효율이 좋은 데다 방수까지 된다. 김태원 비전스케이프 대표는 "미스핏도 처음에는 중국 업체들을 찾다가 안 돼서 우리를 찾아온 것"이라며 "결국 우리가 설계까지 일부 개입해 양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비전스케이프는 미스핏의 아시아 총판도 맡아 SK텔레콤과 함께 헬스케어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미국에서도 스마트 제조업 주목
벤처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스마트 제조업은 주목받고 있다. 벤처 투자 전문 조사 업체 DSJ벤처소스에 따르면, 미국의 벤처 투자사들은 지난해 제조업 벤처에 총 8억48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는 종전 최고액인 2012년의 4억4200만달러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가정 자동화(스마트홈)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미국 네스트는 올 1월 32억달러(약 3조2500억원)에 구글이 인수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스마트 온도 조절 장치와 화재 경보기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거액을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 벤처들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엔지니어 몇 명만 있으면 장비나 사무실 없이도 일정 수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달리, 제조업은 시작부터 돈이 많이 든다. 고가의 생산 재료 및 설비, 고도의 제조 과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하드웨어 벤처 업체 대표는 "업계 관심이 소프트웨어에 쏠려 있어 투자받기가 쉽지 않다"며 "하드웨어 전문 투자 펀드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