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근 지식문화부장

책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목은 ‘힘들 때 꺼내 보는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암으로 생사의 기로에 선 40대 미국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험한 세상을 아비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어린 세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담은 자전적 기록입니다.

암 판정은 대개가 그렇듯 도둑처럼 닥쳤지만, 다행히 그에게는 22년 동안 써내려온 일기가 있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기도 전, 장래의 자녀들을 생각하며 쓰기 시작한 기록이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온전한 모습을 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됐습니다.

저자는 평범하면서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14세에 군사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군복을 입고 생활을 시작한 직업 군인입니다. 책의 목차와 메시지도 그가 일찍부터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았던 맥아더 장군의 연설문의 교훈을 따라 정리합니다. 처절한 투병 과정은 물론, 성장과 연애, 결혼, 부부 생활, 일과 가족 사이의 균형 잡기, 종교와 신앙, 군에서의 갖가지 부침들을 열거해 가며 스스로 체득한 삶의 교훈을 전합니다.

사실, 암과 같은 난치병 환자의 시한부 투병기는 다분히 극적인 데가 있지만, 그렇게 드문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을 눈여겨 보게 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저자가 남달리 일찍부터 꾸준히 일기를 쓰게 된 동기입니다. 그는 열두 살 때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할아버지의 옛 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봐온 모습과는 사뭇 다른 할아버지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편지 속에서 접하게 되면서, 자신이 조부모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저자는 20대 초반, 우울증으로 고생하시던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괴롭히느냐고. 할아버지는 “죄책감 때문”이라며 그저 울기만 하셨다고 합니다. 저자가 20대 중반일 때는, 반신 마비로 17년을 휠체어에 앉은 채로 살아온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매일 살아갈 수 있게 버팀목이 돼주는 게 무엇인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말없이 벽을 가리켰습니다. 거기엔 수많은 가족들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었지요.

저자의 눈에는 부모의 모습도 극히 일면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약하거나 지나치게 친근해 보이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둔 반면, 어머니는 늘 살갑게 자신을 대했던 것으로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반문해 봅니다. '언젠가 내 손자들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일찍부터 시작한 것이 일기쓰기입니다. 훗날 손주들에게 직접 읽어줄 생각으로 시작했던 기록은 공교롭게도 아들들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남기는 유고 자전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구들도 그렇습니다. 안다고 해도 피상적입니다. 서로 미처 들려주지 못한 사연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성석제의 소설 ‘투명 인간’에는 한 식구가 함께 일을 겪고도 서로 달리 이해하고 기억하는 모습들이 묘사됩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고부간의 시선은 어찌 그리 엇갈릴 수 있는지, 읽다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인문학을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 사람은 이태수 인간환경미래연구원장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때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그게 이력서이고 히스토리입니다. 국가나 민족, 인류만 히스토리를 가진 게 아니라 누구나 저만의 히스토리를 살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일반 평민들이 다양한 삶의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고전문학 연구자인 허경진 연세대 교수가 최근 재출간한 ‘조선평민열전’을 보면, 조선시대에 평민들의 부와 지식이 축적되면서, 자신들끼리 모여서 배우고 가르치는가 하면 시를 짓고 전기를 쓰는 움직임이 활발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기록 문화에 관한 한 지금의 우리는 안타깝게도 선조들의 아름다운 전통을 많이 잃어버린 듯합니다.

요즘 다시 불처럼 일고 있는 이순신 열풍도 충무공이 남긴 기록 덕분 아니겠습니까.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의 인기만 해도 작가의 상상과 문체에 힘입은 바 있겠지만, 충무공의 난중일기가 없었다면 작가는 해석의 단서조차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기록의 힘입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편지’ 추천사는 불과 얼마 전에 작고한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쓴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결말을 예감이라도 한 듯, 말머리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결국엔 행진의 끝에 이른다. 어떤 이들에게 그 길은 길고, 어떤 이들은 짧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정의 길이가 아니라 우리가 택한 걸음들이다.”

윌리엄스는 63세 나이로 스스로 여정을 마감했습니다. ‘길이’ 대신에 선택한 그의 마지막 ‘걸음’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아직도 마음 아파합니다.

책 속의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저자를 아꼈던 존 모리스 목사가 저자에게 책을 쓰라고 재촉하면서 들려주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전쟁과 살인 같은 좋지 않은 소식들로 폭격을 받습니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각자 맞닥뜨리는 온갖 어려움까지 더해지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별로 놀라울 게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가운데 가장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자신의 몫을 살아가는 동안, 결단력과 참을성과 용기를 발휘하면서 최선을 다해 눈앞의 삶을 대면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들과도 공유해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야말로 그런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해야 합니다."

일기 같은 기록의 1차적인 목적은 자기 성찰에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남에게 읽힐 때는 그만 한 소통의 도구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읽으면서도 틈틈이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글은 조선비즈 북클럽 8월 마지막 주 선정도서의 북리뷰를 축약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