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종합 대책 발표로 최근 활기를 띠는 재건축 시장의 온기(溫氣)가 더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재건축 연한 단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같은 재정비 사업 규제가 한꺼번에 풀리면서 도심 재건축 사업 추진이 훨씬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청담동지점장은 "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규제가 대거 완화되면서 사업 추진 부담이 크게 줄었다"며 "특히 용적률이 낮고 지어진 지 30년 가까이 된 서울 목동·상계동 아파트 단지 등이 유망해 보인다"고 말했다.

소형주택 비율·안전진단 대폭 완화

그동안 서울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강남의 주공 아파트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머지 지역의 단지들은 낡고 오래돼 재건축하고 싶어도 재건축 가능 연한(준공 후 최장 40년)에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들 단지도 종전보다 빨리 재건축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재건축 연한을 현행보다 최대 10년 단축하면서 준공일로부터 30년만 지나면 사업 추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가령 1988년과 1991년에 지어진 서울 지역 아파트의 경우 지금까지는 2022년과 2031년부터 각각 재건축이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2018년, 2021년이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재건축 연한 단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 재정비 관련 규제가 대거 풀리면서 서울 목동·상계동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도심 재건축 사업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사진은 1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신시가지 아파트 전경.

또 재건축 연한만 지나면 건물 구조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안전진단도 쉽게 통과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주차장이 없고 층간소음이 심하거나 배관 등이 낡아 생활이 불편한 단지의 재정비 사업 촉진을 위해 안전진단 기준에서 주거환경 비중을 현행 15%에서 40%로 높인 데 따른 것이다. 소형·임대주택 의무비율도 낮춰 사업성을 높였다. 김재정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는 주차장 부족, 층간소음, 냉난방 설비 노후 등으로 주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지만, 재건축 연한에 묶여 다시 짓지 못하고 있다"며 "내년 하반기부터 재건축 연한이 줄어들면 사업 추진 단지가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 신시가지·상계 주공 受惠 예상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번 재건축 연한 단축으로 당장 수혜를 보게 된 단지는 서울 19만4435가구(354개 단지)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총 92만1400가구(3077개 단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1980년대 중반부터 입주를 시작한 서울 목동 신시가지를 비롯해 상계동 주공, 분당·평촌 등 1기 신도시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1985~88년에 준공한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1~14단지)는 지상 5~15층으로 지어져 용적률(110~160%)이 낮은 데다 양천구청이 재건축 기본 계획도 수립해 놓은 상태여서 앞으로 재건축 논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목동의 M부동산공인 직원은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의 용적률이 낮고 입지여건도 좋은 편이어서 올 들어 투자자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에 들어선 주공 아파트 3만여 가구도 지어진 지 30년이 다 됐을 뿐 아니라 용적률(약 160%)도 비교적 낮은 편이어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이 밖에 1980년대 후반에 준공된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아파트,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문정동 시영 아파트, 서초구 서초동 삼풍 아파트, 마포구 성산동 시영 아파트 등도 재건축 연한 단축의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재건축 연한 문제로 리모델링 사업을 주로 추진해왔던 경기 분당·평촌 신도시 아파트들도 재건축으로 사업을 전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업계에서는 성남시 은행동 주공아파트와 안양시 호계동 덕원·삼신5차, 고양시 일산동 미주6~8차, 탄현 주공아파트 등이 사업에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했다.

"용적률·분담금·사업진척 등 따져봐야"

재건축 규제가 대거 풀렸지만, 당장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안전진단과 재건축 연한 기준의 문턱이 낮아지더라도 기존 아파트의 용적률이 200% 안팎인 경우 일반 분양분이 적어 사업의 수익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이미 재건축 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강남구 개포 주공, 송파구 가락 시영, 강동구 고덕 시영 등 강남권 저층 아파트들도 최근 조합원들이 내야 할 추가 분담금이 예상보다 많게는 1억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사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권일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주택경기 침체기에 사업이 지연되고 일반 분양가도 높게 올리지 못하면서 조합원 부담이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크게 늘었다"며 "작년 말부터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것도 매수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이번에 규제 완화 혜택을 보게 된 단지들은 아직 재건축 초기 단계여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현재 사업 추진 속도와 예상 분담금, 주변 시세 등을 따져 아파트 구매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