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국 뉴욕의 숙박비는 너무 비쌌다. 우리가 어렵사리 묵은 곳은 소위 '히스패닉 할렘'이라고 불리는 이스트할렘이었다. 하루는 숙소 앞길에서 윗동네 청년들과 아랫동네 청년들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숙소 아래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아저씨가 만드는 샌드위치 집이 있었는데, 우리에게 특별히 도시락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남미는 위험하지 않은가요?”

우리 부부가 남미에서 여행을 시작했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물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오가는 여정 중에 우리보다 고수인 여행자들을 만나면 비슷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혼자 캠핑하면 위험하지 않아요?"
"여자가 히치하이킹하면 위험하지 않아요?"
"노숙은 위험하지 않나요?"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어딜 가나 조심해야 하는 건 같아요. 큰 도시에서나 작은 도시에서나, 여행을 나섰을 때든 아닐 때든 늘 조심해야죠. 하지만 조심만 한다면야 어디라고 특별히 더 위험한 곳은 없지요. 그렇게 여행을 하고 나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어요.”

2.독일 함부르크 거리의 카페에서 팔뚝에 잔뜩 문신을 한 아버지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사람 외모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여행자들에게도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브라질, 그곳에 직접 가 보고 나서야 우리는 그전까지 주고받은 경고와 걱정이 지나치게 과장된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페루에서 브라질로 넘어 가기 전에 만난 친구도 우리에게 말했다. “페루는 안전하지? 그래도 브라질에서는 조심해.”

하지만 정작 우리 눈에 들어온 브라질의 첫 도시 상파울루는 아주 세련된 도시였다. 그곳 호스텔 직원은 “이곳이 그렇게 위험하다면서?”라는 우리 질문에 “천만에. 아주 안전해”라고 자신있게 답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대답 끝에 이런 말을 굳이 덧붙였다. “하지만 말이야, 리우에서는 조심해. 거긴 위험하니까.”

얼마 후 리우에도 가 봤다. 그곳에서 유명한 산동네 빈민가인 ‘파벨라’를 구경하고 싶었다. 그 지역을 돌아보는 투어가 관광 상품으로까지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한때 조직범죄단이 장악하고 있으면서, 경찰도 함부로 못 들어갈 정도로 위험하다는 말이 돌던 곳. 호스텔 직원에게 물어 봤다. 그는 가는 길을 알려주며 대수롭잖은 듯이 말했다. “걱정 마. 안전한 곳이니까.” 그런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살바도르는 조심해. 위험하니까.”

살바도르에도 가봤다. 북동부 해안, 브라질의 옛 수도였던 고도다. 시내 중심로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찾고 있자니, 경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지역 바깥쪽으론 나가지 마. 위험하니까.”

3.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는 여러 곳의 산동네 빈민가가 있다. 이 곳을 '파벨라'라고 부른다. 무료로 운영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술 취한 아저씨들이 요금징수원인 척하려고 했지만, 너무 취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그들만 빼곤 모두 친절했다.

대체 어디가 위험하단 말인가? 살바도르 중심에서 벗어난 외곽? 우리는 시내버스에 올라 여기저기 구경을 다녔다. 하지만 그날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조심하긴 했다. 아주 늦은 시간에는 인적이 드문 곳에 가지도 않았고, 잠시도 소지품과 주머니 물품 관리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은 다 위험하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안전하다고 믿는 여기’에 안주하기 위한 마음의 근거로 삼는 건 아닐까.

사실 정말 무서운 곳도 있긴 있었다. 우리를 가장 많이 떨게 했던 곳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였다. 거리 곳곳의 노숙자들. 그렇게 많은 곳은 처음 봤다. 게다가 다수가 약에 쩔어있었다. 뭔가에 취해있는 사람들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그곳 호스텔 직원도 지도 위에 빗금을 박박 그어가며 “여긴 위험하니까 가지마”라고 주의를 줬다. 빗금 한쪽 끝에 우리가 묵는 호스텔이 자리잡고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도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 기차역에서였다. 가방 하나는 등에 지고 손가방은 어깨에 메고 큰 트렁크를 객차 안으로 끌어올리려던 참이었다. 주머니 쪽에서 뭔가 느낌이 왔다. 순간 나는 손을 뻗었다. 누군가의 손목이 덥썩 잡혔다. 서로 어쩔 줄을 몰라 잠시 그대로 있었다. 손을 놓아주니, 그는 전화를 받는 척하며 기차에서 내려 가버렸다. 중년 남성이었다.

4.살바도르의 한 골목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던 아저씨들 사이에 즉석에서 노래판이 벌어졌다. 내가 카메라를 꺼내자, 아저씨는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덕분에 식당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식당은 경찰이 가지 말라는 구역 '바깥쪽'이었던 듯하다.

그 이상의 큰 사고는 없었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사 남미나 동유럽에서 뭔가를 잃어버렸더라도, 그곳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무엇보다 웃는 얼굴로 우리를 도와주던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어딜 가나 조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저 안전이 걱정된다는 이유만으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주저하는 것은, 아무래도 더 많은 것을 놓치게 되는 선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