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성 기자

불과 2주 전만 해도 ‘먼 나라 이야기’였던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매일 얼굴을 대하는 동료와 친구들이 참여하는 일상적인 행사가 되어 버렸다. 더위도 한풀 꺾였는데 졸지에 얼음물을 뒤집어쓰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농담 섞인 트위터 글도 보인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한 미국 청년에 의해 시작된 이 독특한 기부 캠페인의 모금액은 한 달도 채 안돼 800억원을 넘어섰다. 미국에서는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형상화한 할로윈 코스튬이 일찌감치 등장해 화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놀이와 자기과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리 있는 이야기다.

최근 영국의 한 포털이 이 캠페인에 참가한 1528명의 영국인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은 얼음물 샤워만 하고 기부는 하지 않았다. 캠페인의 취지도 모르고 '재미삼아' 얼음물을 끼얹었다는 응답자도 53%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캠페인의 성공은 전세계 60억 인구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초연결(Hyper-connected)'시대의 도래를 피부로 느끼게 해 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장을 조금 보태 ‘한두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인 SNS 세상에서 빌 게이츠와 레이디 가가, 리오넬 메시 등 유명인들의 동참은 지역적인 이슈가 이렇듯 촘촘하고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타고 삽시간에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는데 필요한 추진력을 불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거물 CEO와 정치인의 소탈하고 격의없는 모습은 권위주의적인 문화에 익숙한 다수 국내 네티즌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공화당 출신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얼음물을 뒤집어 쓴 뒤 “생일 선물로 얼음물 보낸다”며 민주당 소속으로 역시 대통령을 지낸 ‘친구’ 빌 클린턴을 다음 타자로 지목했다. 클린턴이 조지 H W 부시(조지 부시의 아버지) 전 대통령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등 각별한 두 사람의 친분관계를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 정가에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인도에서는 빈곤층을 돕기 위한 ‘쌀 나누기’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폭격의 참상을 알리는 ‘건물 잔해(rubble) 뒤집어쓰기’ 릴레이로 변신하는 모습을 통해 지역사회와 국제사회가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 초연결시대를 정의하는 중요한 특질로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통해 국내에서도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이 전에 없이 높아진 것에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루게릭병 치료가 국내에서 이슈화 되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루게릭병과 함께 대표적인 신경계 퇴행성 질환으로 비슷한 치료 매커니즘이 적용되는 파킨슨병의 경우 우리나라 60세 이상에서 발병률이 1.47%로 높다.

다만 지역 이슈가 글로벌 이슈가 되고 또 그것이 다른 지역의 로컬이슈로 자리잡는 글로컬라이제이션 흐름 속에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 대한 냉철하고 깊이있는 고민이 필요할텐데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국내 이슈로 편입되는 초기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느끼기 어려웠다.

땅덩어리가 작고 초고속 인터넷망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소셜미디어가 위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초연결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지만 초연결성 자체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초연결성이란 그릇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지느냐에 따라 전 세계가 혜택을 함께 누릴수도 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여전히 진행형인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우리에게 안겨준 챌린지(도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