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실시한 '노선별 지정항공사 제도'를 놓고 항공업계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실적부진에 따른 비용절감의 한 방법으로 항공사끼리 경쟁을 붙여 최적(最適)의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를 노선별로 선정했다. 지난달 11일 국내에 취항하는 국내외 26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연 데 이어 이달 18일 항공사 선정 결과를 업체에 개별 통보한 상태다. 삼성은 선정된 항공사와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삼성전자는 연간 1500억원을 항공 출장비로 사용하는 특별 고객이라 평소에도 특별 대우를 해왔는데, 이번 경쟁입찰로 인해 항공사들이 감내하기 힘든 정도의 '초(超)특급 서비스'를 울며 겨자 먹기 식(式)으로 하게 됐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본지가 28일 입수한 한 항공사의 노선별 가격·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 입찰을 통해 '좌석 클래스의 구분 없이 1년 연중 확정 운임을 제공한다' 등 애초 요구한 조건 대부분을 따낸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삼성전자는 앞으로 1년 동안 뉴욕행 왕복 항공권을 1년 연중 내내 비즈니스석은 539만2100원, 이코노미석은 189만2100원의 단일 요금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는 이 항공사의 성수기 요금을 기준으로 할 경우 일반 요금보다 각각 200여만원, 70여만원 정도 싼 것이다. 파리 노선의 이코노미석 요금은 168만9000원으로 결정됐다. 일반 승객들이 내는 요금은 평상시 196만8000원 정도이고, 성수기 때는 202만9000원까지 치솟지만 삼성은 성수기와 상관없이 같은 요금을 내면 된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성수기와 비수기 요금이 크게 다른 것은 전 세계 항공사들에 공통된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인데, 다른 곳도 아닌 세계적 기업인 삼성전자가 그런 룰을 깨고 특혜를 요구해온 것은 상식 밖의 접근이라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또 항공권 결제 시한은 출발 2일 전까지로 늦춰졌다. 일반 승객들이 출발 일주일이나 열흘 전까지 항공권을 구매해야 하고 이후에 일정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면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별적 특별 대우이다. 항공기 앞쪽이나 비상구 근처 등 '선호 좌석'을 삼성전자 직원들에게 우선 배정하고 기내 수하물을 10㎏ 추가해주는 조건도 얻어냈다. 공항에서 발권 시 '전용 카운터' 사용도 추가됐다.

지정항공사로 선정된 항공사들은 향후 다른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삼성전자와 비슷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을까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일부 고객은 "선호 좌석 우선권이나 전용 카운터 같은 조치가 기존 우대 고객들의 편의를 해칠 것"이라고 불평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다른 고객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좌석 우선권 사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항공권에 끼어있는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삼성에 항공권 가격을 할인해준 만큼 일반 항공승객에게도 가격할인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고의 비용 효율성을 추구하는 기업의 노력을 '자사(自社) 이기주의'로만 매도할 수는 없으나 업계의 기본적인 룰은 가급적 존중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