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를 졸업하고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증권사에 입사. 30대 초반의 나이에 대형 증권사의 팀장으로 고속 승진하면서 증권계의 ‘떠오르는 별’로 등극. 호화 결혼식에 이어 독립 후 회사 설립. 그러나 주가 조작에 휘말리며 짧은 시간 이뤘던 성공은 삽시간에 한 줌의 모래처럼 사라졌다.

드라마나 영화의 내용이 아닙니다. 지난 22일 주가 조작과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전 A투자증권 스몰캡팀장 J씨(40)의 이야기죠. 한 때 중·소형주 전문 애널리스트로 업계에 명성을 떨치다 그릇된 욕망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몰락하게 된 J씨의 얘기가 최근 증권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J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증권사는 물론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업계 전체에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습니다. 지난 2003년 증권업에 입문한 뒤 계속 리서치센터에서 몸담으면서 지금껏 주로 중·소형주를 전문으로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죠. 능력을 인정받고 3년만에 더 규모가 큰 B증권사로 옮겨 불과 30대 초반에 스몰캡팀장을 맡았고, 이어 A투자증권에서도 팀을 이끌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과거 ‘잡주(雜株)’라고 불리며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코스닥 종목들을 치밀하게 분석해 주가 흐름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전하더군요. 능력을 인정받은 J씨는 여러 언론사들로부터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여러 차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능력만큼이나 증권가에서 화제가 된 것은 그의 폭넓은 인맥관리였습니다. 보통 애널리스트는 주식을 파는데 주력한다는 의미에서 ‘셀 사이드(sell side)’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주식을 사는 위치라 ‘바이 사이드(buy side)’로 불립니다. 실제로 자신에게 ‘갑(甲)’의 위치에 있는 펀드매니저들에게 J씨만큼이나 신망을 얻는 애널리스트를 찾기도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업력이 뛰어났다고 하네요.

그의 인맥의 중심은 1974년 동갑내기 모임인 이른바 ‘74라인’과 대학 동문들의 사조직인 ‘K라인’이었다고 합니다. 뛰어난 사교성을 바탕으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물론 투자자문사, 연기금 등에 이르기까지 넓은 인맥을 자랑했다고 하네요.

젊은 나이에 축적한 부(富)와 큰 씀씀이도 화제였습니다. 한 펀드매니저는 “몇 년 전부터 J씨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결혼식도 최고급 호텔에서 했고, 부유층에 어울릴 법한 집이나 차도 있어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탁월한 능력만큼이나 많은 재산도 가졌다고 알려진 J씨의 주변으로 욕심많은 증권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화려했던 성공 신화가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지난 2011년부터 현대EP와 삼원강재, 티피씨글로벌 등 일부 종목을 사들인 후 주가를 끌어올리고 매도해 부당한 차익을 얻은 혐의로 J씨를 구속하고 작전에 관여한 증권가 인물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운용사의 펀드매니저 몇 명이 조사를 받고 구속됐다고 하네요.

한 때 J씨 주변에 있었던 많은 증권업계 사람들은 이제 J씨와의 연결고리를 없애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혹여 꼬투리가 잡힐까, 메신저와 이메일을 삭제하고 있는 것은 물론 작전 대상종목의 매매사실을 입증할 만한 서류를 파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네요. 물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당연히 혐의가 있다면 죄의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겠죠.

흔히 증권업계를 일컬어 ‘욕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라고도 부릅니다. 물론 정당한 방법으로 경제상황을 슬기롭게 예측하고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해 큰 수익을 얻으면 박수를 받겠지만, J씨처럼 부당한 수익 추구를 통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중·소형주 전문 투자가라는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개척해 오랜 기간 국내 증시를 이끌어 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헛된 욕망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고 자멸한 J씨의 사례를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부디 이번 주가조작 스캔들이 정당한 과정을 가볍게 여긴 채 대박만을 좇는 증권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