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16년부터 300인 이상 기업은 퇴직연금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해 2022년에는 전(全) 사업장에 대해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또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퇴직계좌(IRP)의 주식 등 위험자산 보유한도가 확정급여형(DB)과 같은 70%로 상향 조정되는 등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규제가 완화된다.

개별 기업이 기금 운용의 주된 결정 권한을 갖는 ‘기금형 퇴직연금’도 도입한다. 이에 따라 ‘삼성 퇴직연금펀드’ ‘현대자동차 퇴직연금펀드’ 처럼 기업이나 그룹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퇴직연금펀드가 등장할 수 있게 된다. 또 30인 이하 영세 사업장에는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를 도입하고 이 제도에 가입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3년간 한시적으로 재정을 통해 지원한다.

정부는 27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최 부총리는 "(급속한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보장을 강화해 나가는 동시에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을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대책 수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2016년 300인 이상, 2017년 300인~100인 이상, 2018년 100인~30인 이상, 2019년 30인~10인 이상, 2022년 1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도입을 의무화한다. 앞으로 이 기간 안에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과태료 등 벌칙이 부과된다. 이에 따라 당장 2016년부터 300인 이상 미가입 사업장 672개(74만명)가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선 도입 부담을 감안해 1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2년까지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고, 30인 이하 사업장에는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 가입을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이 사외에 기금을 설립하고 퇴직연금 적립금을 기금에 신탁하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내년 7월부터 도입된다.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대상 범위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을 마련하면서 구체화할 방침이다.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단일기업형 기금 형태로 도입하되 기업들이 계약형과 기금형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중소기업 퇴직연금기금제도는 영세 기업이 독자적으로 퇴직연금 가입이 수월치 않다는 점을 고려해 사업주와 근로자, 정부를 대표하는 운용위원회를 설치하고 연금을 공동 운용하게 된다. 정부는 이 기금에 가입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2015년부터 퇴직급여 적립금의 10%와 자산운용수수료(0.4%)의 절반(0.2%)을 재정으로 3년간 지원한다.

아울러 ‘퇴직연금 사각지대’인 근속기간 1년 미만 비정규직 근로자를 퇴직급여 가입대상에 포함한다. 사업주가 퇴직급여를 주기 않기 위해 1년 미만 기간제를 사용하거나 다른 기간제 근로자로 바꾸는 등의 편법행위를 막기 위한 것으로 2016년부터 시행한다. 근속기간 기준은 수습 기간 등을 감안해 3개월 이상부터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신설 사업장이 법대로 퇴직연금을 도입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의무화 규정도 손질한다. 지금은 2012년 7월 이후 신설된 사업장은 설립 1년 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야 하고, 도입하지 않으면 퇴직금제도를 설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간주한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설립 1년 내 퇴직연금 미도입 시 과태료를 내도록 벌칙 규정을 신설한다.

퇴직연금의 자산 운용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현재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의 주식 등 위험자산 보유 한도를 현행 40%에서 70%로 높이고 개별 위험자산에 대한 보유 한도도 없앤다.

예금자 보호도 강화된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계좌(IRP)의 경우에는 예금자 보호한도를 별도로 적용해 주기로 했다. 지금은 예금 등 일반 금융상품과 퇴직연금을 합해 금융기관별로 1인당 5000만원까지만 보호를 받지만 앞으로는 DC형과 IRP 적립금에 대해서는 추가로 금융기관별로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개인연금을 장기간 유지하는 가입자들이 운용수수료를 할인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고, 금융업계를 중심으로 올해 안에 퇴직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을 개발키로 했다. 또 가입자의 사망이나 3개월 이상의 요양, 천재지변, 파산 등 부득이한 이유로 연금계좌를 중도해지해 일시금을 수령할 경우 연금소득과 동일하게 저율 분리과세 하기로 했다.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퇴직연금 의무가입이 정부안처럼 확대될 경우 2020년말에는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170조원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현재 수준(80조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