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이 대기업 담합행위로 피해를 입어도 구제받을 길이 없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기업은 담합을 통해 부당이득을 얻다 적발돼도 솜방망이 처벌만 감수하면 된다. 피해자가 담합 피해를 구제받을 법적 장치는 있으나마나하다는 평가다.

담합 처벌 방법은 행정처분, 형사처벌, 민사 손해배상 3가지다. 행정처분은 공정거래위원회 몫이다. 형사처벌은 검찰이 기소해야 가능하다. 소비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손배소송을 제기해 피해액을 배상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우선 소비자가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정보 불균형을 뚫고 피해를 입증해도 담합 기업이 손해배상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 재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담합 기업에게 과징금을 부과해도 이런 저런 사유로 70~80% 감면받는다.

법률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대기업 상대로 답합 관련 손배 소송에서 이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소비자가 담합 관련 손배소송에서 이긴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 설탕업계 과징금, 소비자 피해액의 4.3%에 불과

담합으로 기업이 얻는 부당이득이 과징금의 수배에 이른다는 학계 연구가 나왔다. 여정성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설탕·빙과 업계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액을 산출했다. 여 교수는 “업체들은 담합으로 상당한 부당이득을 얻었지만 그로 인한 과징금은 터무니없이 적었다”며 “과징금 부과 상한선을 높여 부당이득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CJ㈜, 삼양사, 대한제당 등 설탕 업체들이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담합한 탓에 소비자가 입은 피해액은 1조1826억원이었다. 공정위는 기본 과징금 2242억원을 부과했다. 업계는 자진 시정, 재발방지 약속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75~80%를 감면받았다. 결국 업체들이 낸 과징금은 511억3300만원에 불과했다. 소비자 피해액 추산액의 4.3%에 불과했다.

설탕 원당가격 기준 전체 소비자피해액 추정(단위: 백만원)

빙과업계 과징금도 소비자 피해액의 20%에 불과했다. 여 교수는 2005년 1월, 2006년 3월 빙과 가격 담합으로 업계가 얻은 부당이익을 461억원으로 추산했다. 롯데제과 등 4개 업체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45억원에 불과했다.

빙과 담합의 총 소비자피해액 추정(단위: 백만원)


◆ 법률 전문가 "피해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승소 가능성 없어"

법률 전문가들은 현행 법 체계상 담합 관련 손배소송에서 소비자가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손배소송에선 원고가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소비자가 얼마나 피해를 봤는지 산출해 입증자료와 함께 재판부에 제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설탕 가격 담합이 이루어진 1991~2005년 설탕 구입 영수증을 챙겨 제출해야 피해액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더욱이 담합 기간은 상당히 길다. 10년 이상 담합한 사례도 수두룩하다. 소비자가 피해액을 배상받으려면 해당 기간 영수증을 일일이 챙겨한다는 뜻이다. 이러니 소비자가 손배송을 제기한 사례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담합 사건 관련 손배소송은 조합, 협회 등 소비자 단체가 주로 제기한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이 비료 담합 소송, 전국개인택시연합회∙법인택시연합회는 LPG 담합 소송, 화물연대가 경유 담합 소송을 제기했다. 비료 업계는 15년간 담합했으나 한농연은 2년치 자료밖에 갖고 있지 않다. 담합 피해액은 2년치만 청구할 수밖에 없다. 개인택시조합과 화물연대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에 기초해 구매량을 산정했다.

소송 기간도 오래 걸린다. 담합 업체들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으면 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이 판결이 나오는데 2~5년 걸린다. 그 다음 본안 소송이 진행되는데 1심 판결이 7년만에 나오기도 한다. 군납유 담합 사건 1심은 7년, 2심은 소송 개시한 지 10년 만에 판결이 나왔다. 서울시가 승소한 지하철 7호선 입찰 담합 1심 판결도 7년 걸렸다.

서상범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는 “이익단체에 속하지 않은 일반 소비자는 손배소송을 벌이기 어렵다보니 손해는 있지만 배상은 없다”라고 설명했다. 오지영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팀장은 “소비자는 기업과 달리 정보가 부족한데 피해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있다보니 소비자가 승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봉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비자와 기업과 손배소송에서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고 소송기간도 수년이 걸려 승소가 어렵다”며 “공정위가 손해액을 특정하는 등 손배소송에서 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