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 삼성 임원 출신 잡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최고경영자(CEO) 위주로 진행돼 왔던 삼성 출신 영입 전쟁이 임원급으로 확산되고, 업종도 IT 대기업 분야 중심에서 화학·서비스·금융 등으로 가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들도 삼성 임원 영입에 가세하고 있다.

SK·동부·효성그룹 잇따라 삼성 출신 영입

효성은 최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비서팀장 출신인 박필 전 삼성그룹 전무를 지원본부 인사총괄 겸 효성인력개발원장(전무)으로 영입했다. 박 전무는 1984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상사부문 상무 등을 거쳐 2011년 비서팀장으로 1년가량 이건희 회장을 보필했었다. 효성은 이에 앞서 지난 6월 삼성전자 LCD 제조팀장을 거친 이택근 전무를 필름사업장으로 영입했고, 4월에는 '세빛섬' 운영을 총괄하는 효성 FI사업단장으로 호텔신라 출신 김진수 전무를 영입했다.

SK그룹도 올 들어 삼성 출신 임원을 대거 영입했다. SK C&C는 지난 3월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메모리 마케팅 임원(전무)을 지낸 김일웅씨를 IT제품 유통업체인 ISD테크놀로지 대표로 영입했다. 또 임형규 전 삼성종합기술원장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정보통신기술 총괄 부회장으로, 서광벽 전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부사장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전략총괄 사장으로 각각 영입했다.

한화그룹도 지난 5월 반도체 제조공정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최진석씨를 ㈜한화 제조부문 운영혁신총괄사장으로 선임했다. 삼성전자에서 '자랑스런 삼성인상' 기술상을 세 차례나 받았던 최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하이닉스반도체로 옮긴 뒤 다시 한화로 영입됐다. 한화솔라원은 신임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에 남성우 전 삼성전자 정보기술(IT)솔루션 사업부장(부사장)을 선임했다.

삼성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한 동부그룹은 올해도 삼성 임원 출신을 잇달아 영입했다. 동부대우전자는 지난 5월 최진균 전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영입한 것을 비롯, 올해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 10명 가운데 5명을 삼성 출신으로 채웠다.

금융권에서도 삼성 출신이 중용됐다. BC카드는 지난 3월 서준희 삼성사회봉사단 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메리츠화재는 3월 주총에서 남재호 전 삼성화재 부사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같은 회사의 강태구 전무도 삼성화재 출신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융계에서 삼성 출신 임원 영입이 늘어난 것은 경영난을 벗어나기 위해 삼성의 '관리 능력'을 배우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과 우량 중소기업에서도 삼성 출신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TV용 리모컨 제조업체 삼진은 삼성전자에서 TV 생산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출신인 조현호 부사장을 영입해 생산·영업·마케팅 총괄 업무를 맡겼다.

"치열한 내부 경쟁 거쳐 직무 능력 탁월"

삼성 출신 선호 현상에 대해 삼성그룹이 국내 기업들의 임원을 양산하는 '육군사관학교'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헤드헌팅 업체 HR파트너스의 안연희 이사는 "치열한 내부 경쟁을 거친 삼성 출신 임원들은 직무 능력과 국내외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며 "국내 기업 사이에서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삼성의 글로벌 경쟁력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헤드헌팅 업계에서는 하반기 삼성 출신 잡기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실적 악화로 구조조정을 진행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헤드헌팅 업체의 고위 임원은 "일자리를 알아봐 줄 수 있느냐는 삼성 소속 임원들의 문의가 지난해보다 20% 정도 늘었다"며 "상반기에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된 금융권 외에 전자 등 비(非)금융 계열사 임원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