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삼성SDI 등 한국 업체들이 잇따라 굵직굵직한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내며 일본이 한발 앞섰던 시장에서 역전(逆轉)을 노리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최근 한·일 양국 기업이 사운(社運)을 걸고 경쟁을 펼치는 신성장 시장이다. 시장분석기관 내비건트 리서치 등에 따르면 현재 6조원 수준의 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규모가 2020년이면 2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본다.

LG화학은 독일 폴크스바겐 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우디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로써 전 세계 10대 완성 자동차 그룹 중 GM, 르노·닛산, 현대·기아차, 포드 등 6개 그룹에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 LG화학은 올 들어 중국 내 자동차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완성차 업체 상하이기차·제일기차·장안기차 등과도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SDIBMW·포드·크라이슬러 등과 수주계약을 맺었다.

도요타·닛산 등 자국 기업에 의존하는 일본 파나소닉, AESC(닛산과 NEC의 합작사), 리튬에너지재팬(GS유아사와 미쓰비시 자동차의 합작사) 등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세계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촉발한 전기차 배터리 전쟁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최근 극적으로 회생하고 있다. 한때 태양광과 함께 대표적인 '거품'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중국과 미국이 전기차 시장을 키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중국이 미세 먼지를 줄이려 2013~2017년 304조원을 투입하고 이 중 상당 부분을 전기차 육성에 나선다고 밝히면서 시장 전망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누적 기준 전기차 500만대 보급 계획을 내놨다. 미국에선 순수 전기차 테슬라가 성공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이대로 가면 2017~2018년쯤에는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이 노트북·휴대폰 같은 소형 배터리 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셀.

시장 상황이 좋아지며 그동안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해왔던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도 올라가고 있다. 일본 시장조사 업체인 B3에 따르면 LG화학은 지난해 1636MWh(메가와트)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를 판매해 1593MWh를 판매한 일본 AESC를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시장에서는 이대로 가면 올해는 처음으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본다. 전기차가 부각되기 시작한 2~3년 전 일본 업체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70~80%에 달했던 것을 감안하면 큰 변화다.

LG화학과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 매출이 1~2년 후면 조(兆) 단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석제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사장)는 "2016년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전지 분야에서 매출 2조원과 두 자릿수 수익률을 내겠다"고 말했다. 권영수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사장)은 "중대형 전지 사업에 진출한 지 10여년 만에 나온 결과지만 확실한 일등을 향한 목마름은 멈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소재 분야는 여전히 일본 우세

일본 산업계도 만만치 않다. 한국 대기업이 대규모 공장 건설과 같은 스피드 경쟁에서는 앞선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은 여전히 일본이 우위에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배터리 소재 기업의 한 임원은 "일본은 노트북·휴대폰용 소형 전지 싸움에서 삼성·LG의 전격전(電擊戰)에 2011년부터 밀렸지만 전기차 분야 중대형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한 수 위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배터리의 소재 분야에서는 일본이 크게 앞선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 등 4대 소재 중 일부에서만 60%대의 국산화율을 달성한 상태다. 국산화가 안 된 것은 대부분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다.

재계에선 전기차 배터리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소재 기술 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경련 임상혁 상무는 "한국 기업들은 승부를 걸 때가 있으면 집중 투자를 해서 지금까지 소형 배터리전지, 디스플레이 등에서 1등을 차지해왔다"면서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도 취약한 소재 분야의 투자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