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국장급 공무원 A씨(52·남)은 최근 세종시 한 민간 아파트에 ‘하우스메이트’로 들어가려다가 퇴짜를 맞았다. A씨가 ‘국장님’이라는 사실을 안 아파트 집주인이 그를 정중히 거절했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아파트 집주인도 세종정부청사에서 근무 중인 공무원이었는데, 직급은 A씨보다 한참 낮았다. A씨는 “내 직급이 국장이란 사실을 숨기고 다른 후배에게 부탁해서 쉐어하우스를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 중에선 ‘쉐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서울·수도권 지역, 지방 대도시에서 거주하다가 근무지가 세종시로 바뀌면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녀 교육이나 남편·아내의 직장 때문에, 호은 미혼이라 세종시에 혼자 내려와 산다.

이들은 주로 마음이 잘 맞고 처지가 비슷한 직장 동료들끼리 합의해 방 3~4개 아파트를 구해서 집을 공유하며 산다. A씨처럼 ‘국장님’이 하우스메이트로 들어오면 불편해진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이 아닌 가족형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룸메이트가 아니라 하우스메이트라고 부른다. 청사 인근 아파트에 직장 동료과 함께 집을 구해 살고 있는 설모씨는 “원룸은 좁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주민 공동센터가 없기 때문에 기왕이면 좀 널찍한 곳에서 ‘하메(하우스메이트)’와 사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직원 몇 명만 세종시에 중장기 파견하는 경우에도 직원들을 쉐어하우스 형태로 거주시킬 때가 있다. 회사는 세종시에 2~3명이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를 구해주고 기숙사처럼 활용하면 된다.

세종정부청사 전경

세종시에 거주하는 공무원들이 쉐어하우스를 꾸리는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11년부터 세종시에 신규 아파트를 공급할 때, 이전 공공기관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최대 70%까지 특별 분양 물량을 배정했다. 당시 분양가가 낮아서 인기가 좋았던 민간 아파트의 경우, 공무원들은 특별 분양 물량을 일반 실수요자들보다 훨씬 유리하게 집을 구매할 수 있었다. 2011년 분양된 한 민간 아파트는 분양가격이 3.3㎡당 750만원 정도, 총 분양가는 2억5800만원으로 서울 지역 아파트에 비해 분양가가 훨씬 낮아 높은 청약 경쟁률을 보였다. 이렇게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유리하게 분양받은 아파트에 실제 가족이 이주해서 사는게 아니라 ‘하메’를 두고 월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세종시 아파트의 공급이 수요를 훨씬 웃돌고 있는데에는 쉐어하우스도 한 몫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세종정부청사 공무원은 “당시 세종시로 이주하는 공무원이 1명이 1가구씩 집을 구해 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기러기 엄마·아빠’가 많아서 중대형 아파트 수요는 적었다”며 “요새는 룸메이트나 하우스메이트가 많아서 집을 사려는 이들이 없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이사할 요량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집값이 급락해 잠 못 이루는 집주인들도 많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세종시 아파트값은 올 들어 0.22%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