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성부른 새내기 벤처업체를 찾아 초기 자금을 투자해 주는 국내 벤처캐피털(VC)들의 투자 자금이 주로 '중고 신인'들에만 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VC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큰 안정적인 회사에 투자하길 선호하기 때문인데,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되면 오히려 자금이 필요한 초기 기업들이 투자받을 기회가 적어져 벤처 투자 생태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VC 전체 투자 금액 중 52%가 후기 투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제공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VC들이 투자한 금액 6658억원 중 창업한 지 7년이 넘은 회사에 대한 투자금 비중이 52.3%에 달했다. 이렇게 오래된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후기 투자'라고 하는데, 이런 후기 투자금 비중은 2012년 상반기 44.9%, 지난해 47.5%로 계속 상승 추세다.

예를 들어 대성창투는 투자조합을 결성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7위인 네이버에 대한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대성창투에서 투자한 금액은 7억5000만원이었다. 네이버는 지난 1999년 설립된, 업력이 15년 된 대형사다. 이 외에도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지난2009년 와이지엔터테인먼트사파이어테크놀로지에 각각 74억원, 15억원을 투자한 것이 후기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업력이 3년 이하인 회사에 대한 VC들의 투자금 비중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2년 상반기 27.6%, 지난해 26.9%였던 초기 투자금 비중은 올 상반기 25.4%까지 줄었다.

"후기 투자, 수익은 적어도 안정적"

VC들의 투자가 주로 생긴 지 오래된 회사에 집중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VC 업계 관계자들은 중·후기 투자가 투자 금액이 높고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투자금 회수(엑시트)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 안정적이라고 말한다.

VC의 한 투자심사역은 "업력이 오래된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경쟁자가 많아 투자 금액을 산정하는 데 기업 측 입장을 많이 반영해야 하고, 따라서 밸류에이션(기업 가치 대비 가격 수준)이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성과와 실적으로 회사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보장해주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어 선호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다 보면 막상 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초기 기업들이 투자받을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본래 VC의 설립 목적은 잠재력이 있지만 돈이 부족한 창업 초기 업체들을 지원하는 것인데, VC들이 안정성을 추구하며 중·후기 투자만 선호하다 보면 초기 기업 육성에 주안점을 둔 VC 본연의 목적이 약해질 수 있다는 것.

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초기 기업에 대한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반면, 국내 VC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기보다는 엑시트 확률이 높은 큰 회사를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면서 "VC들이 현재 기업 가치보다는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고 과감하게 투자해야 제2의 카카오, 네이버 같은 기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기 투자 쏠림 현상에 VC 양극화 심화

상황이 이렇다 보니, VC 중에서도 후기 투자를 할 여유가 있는 대형사들만 주로 투자하고 작은 회사들은 투자를 거의 하지 못하는 양극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올해 113개 VC의 투자 금액 6658억원 중 덩치가 큰 상위 10개사에서 투자한 금액은 총 2939억원이었다. 전체 VC가 투자한 금액의 44.1%에 해당하는 규모로,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다.

최근 3년간 VC들의 전체 투자 금액에서 상위 10개사가 차지한 비중은 계속 높아졌다. 지난 2012년 상반기 39.9%를 기록했던 상위 10개사의 투자 비중은 작년 상반기 40.1%로 높아졌다.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VC)

주식 취득 등의 방식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회사. 투자한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하거나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될 경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