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주 전 하이트진로 상무(좌), 채양선 아모레퍼시픽 부사장

보수적인 유통업계에 여성 임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요직에 배치돼 조직에 잘 적응하는 임원이 있는가 하면 프로젝트 실패에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나는 등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입니다.

신은주 하이트진로음료 마케팅 상무는 최근 사퇴했습니다. 신 상무는 오리콤, 동방커뮤니케이션즈, TBWA코리아 등을 거치며 광고계에서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그는 ‘생각대로 T’ ‘사람을 향합니다’ 등 숱한 히트작을 만들어 내다가 2010년 30대 후반 하이트진로 마케팅 상무로 이직해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매우 파격적인 인사였죠.

신 상무는 광고업 종사자답게 세련됐습니다. 통상 청바지에 높은 굽을 신고 회의를 주도했죠. 하지만 하이트라고 새겨진 공장 점퍼를 걸친 50대 남성 임직원들과 어우러 지기가 쉽지는 않았나 봅니다. 일부 직원은 경쟁사인 오비(OB)맥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는 하이트진로에 들어가 ‘드라이 피니시 d’라는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드라이 피니시 d 판매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같은 기간 경쟁사인 OB맥주는 ‘카스’ 하나에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하이트진로는 다(多) 브랜드 전략을 채택하면서 마케팅력이 분산됐습니다. 결국 맥주 시장 1위였던 하이트는 OB맥주에 역전을 당하게 됩니다. 2010년만 해도 하이트의 맥주시장 점유율은 55.8%였습니다. OB 카스맥주는 44.2%에 불과했죠. 하지만 2012년 하이트는 44.34%, OB는 55.66%로 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카스처럼’ 이라는 폭탄주 용어가 생길 정도로 카스의 인기는 더욱 높아갔습니다. 2013년 3월 하이트는 40%, 카스는 60% 시장을 점하게 됩니다.

업계에서는 하이트진로가 맥주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마케팅력의 부재로 봤습니다. d 제품 출시로 마케팅 역량이 분산되면서 기존 하이트와 맥스 브랜드를 약화시킬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옛 명성을 되찾으라는 특명을 내렸습니다. 신 상무는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습니다.

이와 달리 채양선 아모레퍼시픽(090430)부사장은 승승장구합니다. 기아자동차 전무였던 채 부사장은 올 초 아모레퍼시픽으로 옮겼습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올해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마케팅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브랜드별로 흩어진 마케팅 창구를 하나로 묶는 관제탑(컨트롤타워)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섭니다.

지난해까지 아모레퍼시픽은 설화수·헤라 등 고급 화장품 브랜드와 마몽드·아이오페·라네즈 등 대중 화장품 브랜드, 해피바스와 미장센 등 바디·헤어 케어 브랜드 등 각 사업군별로 마케팅 부서를 별도로 뒀습니다. .

아모레퍼시픽 역시 태평양 시절부터 일한 보수적인 남성 임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6개월가량 지난 지금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마케팅력은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2분기 해외 시장에서 호실적을 내며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화장품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해외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채 부사장이 아모레퍼시픽에 깊숙이 뿌리박힌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깰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