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상 공식홈페이지 제공

이달 13~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7차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시상식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다른 수학과 학문에 영향을 미친 연구성과를 낸 젊은 수학자에게 주는 이 상은 시상이 결정된 해를 기준으로 만 40세 이하의 생존 학자에게만 수여된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고 해도 40세 이후에 성과를 낸 학자들은 평생토록 이 상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상당수 수학자들은 진짜 수학의 노벨상이야말로 ‘아벨상(Abel Prize)’이라고 말한다. ‘아벨상’은 노르웨이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1802~1829)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제정된 상으로, 노르웨이 국왕이 매년 수여한다. 2003년 첫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올해까지 총 12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박종일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필즈상은 앞으로 기대되는 젊은 수학자를 위한 상이지만, 아벨상은 평생의 업적을 기리는 상”이라며 “아벨상을 받을 만한 인물에 대한 대략적인 공감대가 수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형성돼 있을 만큼 오랜 기간 수학계에 기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아벨상이 제정된 지 불과 11년만에 수학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발전한 이유는 수상자의 평생 업적을 평가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만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필즈상과 달리 아벨상은 수학자가 평생 이룬 업적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상금도 100만달러(약 10억원)로 800만 크로네(약 13억4000만원)를 주는 노벨상에 필적한다. 이는 필즈상보다 50배 정도 많다.

실제로 장피에르 세르 콜라주 드 프랑스 교수, 마이클 아티야 영국 에딘버러대 명예교수 등 역대 아벨상 수상자 모두 이견이 없을 만큼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박 교수는 “아벨상 수상자 대부분이 이미 오래전 필즈상·울프상 등 수학계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수상전 해당 학계에서 주는 주요 상을 수상한 이력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아벨상 강연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존 밀노어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석학교수도 마찬가지다. 2011년 아벨상을 수상한 밀노어 교수는 1962년 필즈상, 1989년 울프상 등을 받는 등 수학계의 대표상 3개를 모두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밀노어 교수가 학부생 시절 강의에 늦게 들어와 칠판에 적혀 있는 문제가 숙제인줄 알고 풀어 제출한 일화는 수학계의 전설로 통한다. 그 문제는 숙제가 아니라 실은 ‘3차원 공간 속 닫힌 곡선’에 관한 수학계의 오래된 난제였다. 그는 지금도 컴퓨터를 활용해 사회적 현상이나 기상·금융현상 분석에 활용되는 동역학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존 밀노어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 석학교수는 2011년 아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1962년과 1989년에 각각 필즈상과 울프상을 수상한 바 있어 '수학계 3관왕'을 달성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아벨상 수상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박 교수는 “한국은 수학연구 역사가 짧아 당분간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웃 일본만 해도 수학 역사가 100년이 넘었지만 한국은 6.25전쟁 이후 체계적인 수학연구가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현재 한국 수학계가 활력이 넘치는 상태고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등에서 매년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필즈상은 기대해볼 만 하다”고 덧붙였다. 1978년 이후 IMO 출신 32명이 필즈상을 받았다.

올해 필즈상 수상자인 아르투르 아빌라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CNRS) 연구원과 마리암 미르자카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네반리나상 수상자인 수브하시 코트 뉴욕대 교수 등 3명은 1995년 함께 IMO에 참가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수학연맹(IMU)는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수학계 일각에서 제기한 필즈상 수상자 나이제한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인구 고령화 시대에 지금의 40세 규정을 고수하는 것이 맞는지 검토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또 다른 학계 관계자들은 “나이제한이 없는 아벨상이 있는데 필즈상 나이 제한을 높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필즈상 시상 자격 규정 완화는 검토에서 그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