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선옥 기자

"시집살이도 당해본 사람이 더 혹독하게 시킨다고, 어떻게 보면 같은 을(乙) 처지에 해도 너무 합니다."

대기업과 거래할 때는 을의 입장이었던 1차 협력업체가 다시 2차, 3차 협력업체에 업무를 위탁할 때는 '갑'의 위치에서 횡포를 부린다는 말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최근 적발된 대기업 1차 협력업체들의 불공정 행위를 보면 대기업보다 중견기업의 횡포가 더 맵다는 중소기업의 호소가 과장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LG전자 1차 협력업체인 신영프레시젼은 2차 협력사 코스맥과 하도급계약을 하면서 원가 절감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하도급 대금을 깎았다. 2년 동안 이어진 대금 인하 등으로 코스맥은 결국 2012년 4월 부도 처리됐다. 공정위는 신영프레시젼이 부당하게 단가를 인하해 얻은 이익이 1억3800만원이라며 이를 코스맥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는데, 코스맥 측은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코스맥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신영프레시젼과 거래 비중이 100%인 회사였는데 신영이 단가 인하를 포함한 계약 위반 등 불공정행위를 했고, 이를 다 따지면 몇십억원의 손해가 났다"고 했다. 코스맥은 현재 신영프레시젼을 대상으로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지난해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이후 곳곳에서 갑의 횡포를 고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갑으로 지목당한 대기업들은 부랴부랴 상생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사실 대기업의 갑질을 성토하던 1차 협력업체들이 2차 협력업체들에 더 매운 갑질을 해온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야 감시하는 눈이 많고 상생에 대한 인식도 비교적 높지만, 지금까지 피해자로만 인식되던 1차 협력업체들은 감시 범위에서 벗어나 있어 이들이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식으로 2~3차 협력사들을 착취하기 시작하면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공정위가 강조하는 불공정 하도급 관행 개선은 대기업들만 감시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닌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우리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개선을 주요 정책과제로 꼽았다. 공정위가 대기업과 중견기업, 원사업자 뿐 아니라 1차 협력사의 거래 관행에 대해서도 감시를 강화해야 할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