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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결제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IT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도입에 이어 웨어러블 시장의 ‘킬러 콘텐츠’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모바일 결제가 2020년에 플라스틱 신용카드를 완전 대체할 것으로 내다본다. 모바일 결제가 IT 업계의 새로운 ‘돈 맥(脈)’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한국도 모바일 결제를 염두에 두고 확장에 나서고 있지만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과 같은 규제 때문에 성장이 지지부진하다.

◆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로 간편 결제?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워치 '기어 라이브'.

세계적인 금융 결제 서비스회사 페이팔의 힐 퍼거슨 최고상품책임자(CPO)는 지난달 18일 “웨어러블 기기의 핵심 콘텐츠는 헬스케어나 피트니스가 아닌 모바일 결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퍼거슨이 이런 생각에 착안한 것은 지난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의 연례 개발자 대회(I/O)를 보고 난 다음이다. 당시 구글은 자사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모토롤라의 스마트워치 3종을 선보였다.

퍼거슨은 “구글이 이 기기들로 멋진 시연을 했다”고 말했다. 휴면 상태인 스마트워치를 손가락으로 한번 두들기고 “구글, 차를 불러줘”라고 말했더니 차량 중계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인 우버가 실행됐던 것.

퍼거슨은 “이런 경험은 모바일 결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예컨대 상점에 들어가기 전 웨어러블 기기로 미리 상품을 골라놓고, 상품을 수령하고 결제까지 하는 매끄로운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주니퍼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웨어러블 기기의 매출액은 2018년에 19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또 시장조사기관 IDC는 올해 세계적으로 1900만대의 웨어러블 기기가 판매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의 3배 수준이다. 퍼거슨은 "이런 속도라면 모바일 결제 적용도 시간 문제다"고 말했다.

◆ 美 모바일 결제 시장 대응에 분주

모바일 결제 시장은 미국에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모바일 결제 시장 매출이 지난해 2350억달러에서 2017년 7200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선점을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구글과 페이팔, 스퀘어,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마스터카드, 비자 등 회사들은 모두 모바일 결제 플랫폼을 개발해 시장에 선을 보였다. 페이팔은 6개국 모바일 결제 시장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미국 전체 매출에서 모바일 앱 비중이 14%를 차지한다. 시장 진출에 한발 늦은 애플은 5000만 이용자 정보를 토대로 한 모바일 결제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은행들도 모바일 결제 시장의 가능성을 깨닫고 부리나케 개발에 나섰다. JP모건과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는 결제 앱 개발을 비롯해 '클리어익스체인지(ClearXchange)'라는 합작 플랫폼 서비스로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 韓 규제로 성장 지지부진

한국은 훌륭한 모바일 거래 인프라를 갖췄지만, 성장은 지지부진하다. 모바일 결제에 필요한 인증 단계와 규제가 많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회사 아마존의 원클릭 결제와 같은 간편 결제가 활성화돼 있다. 반면 한국은 공인인증서를 비롯한 각종 플러그인(인증 프로그램) 설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정부가 지난 5월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폐기하는 개정안을 발효한 후에도 계속되는 문제다.

이 때문에 국내 모바일 결제 시장은 외형적으로는 규모가 커졌지만 내실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모바일 뱅킹 서비스 사용자는 4032만명(3월 기준)에 달한다. 스마트폰 이용자보다 많은 수다. 하지만 모바일 뱅킹 하루 거래액은 1조6276억원으로 인터넷 뱅킹 거래액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이체나 결제보다는 단순히 예금 조회 서비스로 사용하는 비중이 91%에 달한다.

국내 사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모바일 결제 시장 성장을 주도해야할 금융권이나 정부가 공인인증서 대체 수단을 내놓지 못하면서 민간 IT회사들이 발벗고 나서고 있다”며 “이렇게 되다간 해외 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