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크라사드 카버네 시라(La Croisade Cabernet Syrah)

이달 13일 서울에서 개막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 참석한 전 세계 수학 석학들은 3만원대의 프랑스산 레드와인을 마시며 대회 개막을 축하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ICM 조직위원회는 국내 소비자가격이 3만5000원인 프랑스산 레드와인 ‘라 크라사드 카버네 시라(La Croisade Cabernet Syrah)’를 12일 환영 리셉션과 16일 공식만찬 테이블에 올릴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ICM은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수학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대회다.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첫 행사가 열렸으며 올해로 27회째를 맞는다. 특히 개막식때 개최국 원수가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행사에서 제공될 ‘라 크라사드 카버네 시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와인 산지 중 하나인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에서 생산되는 레드와인이다. 타닌(Tannin)이 많고 떫은 특징을 지닌 카버네 품종과 당분이 많고 과일맛이 강한 시라 품종을 각각 50%씩 섞어 제조했다.

전통적으로 랑그독은 고급와인을 소량 생산하는 보르도나 부르고뉴와 달리 저품질의 와인을 대량 생산하는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랑그독의 와인 제조·판매업체들도 질적인 성장을 이뤄 현재는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한 ‘밸류와인(Value wine)’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번 행사에 제공될 라 크라사드 브랜드 역시 2009년과 2010년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열린 와인 콩쿠르에서 품질을 인정받아 금메달, 동메달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전통 프랑스 와인은 어릴 때 마시기보다는 장기숙성을 충분히 거친 후 마셔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 요즘 생산되는 밸류와인은 병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셔도 풍부하고 매끄러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실리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와인수입사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는 “국내에서 일상적으로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 칠레 등에서 생산된 중저가 밸류와인 소비도 증가했다”며 “각종 행사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을 건배주로 선택하는 사례도 꽤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그룹은 신경영 20주년 만찬때 독일 발타사 레스의 6만원대 화이트와인 ‘모노플 리슬링’을 내놨다. 이보다 비싸긴 하지만 2012년 서울핵안보정상회의 당시에도 10만원 초반대의 미국 나파밸리산 ‘바소’가 만찬주로 사용된 바 있다.

이번 대회 행사기획위원장을 맡은 김선자 청운대 교수는 “대부분의 수학자는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학문 특성상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차분하게 사색을 즐기는 걸 좋아한다"며 "자체 시음회를 통해 수학자들 분위기에 가장 어울리면서도 실리적인 와인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어 김교수는 “와인 고유의 라벨을 노출하는 대신 ICM 로고가 새겨진 라벨을 자체 제작해 와인병에 붙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