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서 내년 여름 완공을 목표로 3억달러(약 3000억원)짜리 대규모 R&D(연구개발) 센터를 짓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이 센터가 2000명 정도 수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새 R&D 센터가 완성되면 삼성은 실리콘밸리 지역에서만 모두 8개의 연구센터를 운영하게 된다. 삼성의 최대 R&D 기지인 수원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최대 규모이며, 삼성은 연구개발 중심축이 국내에서 상당 부분 실리콘밸리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삼성은 실리콘밸리에서 대규모 R&D 단지 조성과 함께 실리콘밸리 내 인재 확보에도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밥 브래넌 삼성전자 북미총괄 DS(반도체·부품) 부문 담당 전무는 지난 27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주(州) 새너제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은 미국 내 최고 인재는 실리콘밸리에 있다고 판단한다"며 "미친 듯이 연구 인력들을 뽑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현재 500명 수준인 실리콘밸리 내 연구 인력을 매년 20~30% 정도 늘린다는 계획이다.

실리콘밸리 人材로 미래 먹거리 찾기

한국 대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구체적인 대상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고급 인재이다. 삼성은 물론이고, 현대차·LG·SK 등 주요 대기업 그룹들이 잇따라 실리콘밸리의 인재들을 두드리고 있다. 사업 분야도 IT에서 자동차·에너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 뉴스 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근 "애플이나 구글에 비해 '혁신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어온 삼성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LG그룹의 경우, 2012년부터 실리콘밸리에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과 공동으로 '북미 기술센터'를 설립하고 기술 트렌드 분석과 함께 인재 확보 활동을 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실리콘밸리에서 이공계 석·박사 출신의 유학생 300여명을 대상으로 채용 설명회인 'LG테크노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이희국 LG기술협의회 사장 등 그룹 최고경영진이 총출동한다.

SK그룹도 2012년부터 실리콘밸리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이나 에너지·화학분야 연구원들을 초청해 채용 설명회 성격의 '글로벌 포럼'을 열고 있으며 현대자동차그룹은 실리콘밸리 먼로파크에 '기술연구소'를 열고 첨단 기술 동향 파악과 인재 채용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에서도 전자와 첨단 소프트웨어 기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너들 발벗고 나서… 채용은 쉽지 않아

실리콘밸리 인재 확보 전쟁은 한국 대표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수시로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상황을 챙기고 있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도 삼성 사장단에 '실리콘밸리 기업의 전략과 창의성을 참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무(왼쪽) LG그룹 회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LG테크노 콘퍼런스’에 참석한 한 이공계 유학생과 악수하고 있다.

2012년에는 윤부근·신종균 삼성전자 사장 등 전자 주요 CEO들이 대거 실리콘밸리를 찾았고 올 6월에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서 미국 실리콘밸리 IT 전문가 18명을 초청해 '실리콘밸리를 수원으로'라는 포럼을 열었다. 실리콘밸리의 창의적인 문화를 수원으로 가져오자는 취지였다. 구본무 회장 역시 매년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채용 설명회에는 다른 일정을 제쳐두고라도 참석하고 있다. 구 회장은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심정으로 인재를 찾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SK 역시 최태원 회장의 의중을 반영해 실리콘밸리에서 공격적으로 인재를 찾고 있다. 최 회장은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 수료 후 2년간 실리콘밸리에 있는 한 IT벤처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 인재들이 한국의 수직적 기업 문화를 기피하는 바람에 국내 기업들이 인재 채용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 내 IT기업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원은 "애플·구글에 다니는 연구원치고 삼성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 한 번 안 받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보수에 비해 업무량이 너무 많은 것으로 소문이 나 이곳 사람들이 그다지 선호하는 기업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IT기업인 알리바마·바이두까지 실리콘밸리 인재 확보 전쟁에 뛰어들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5~6년차 연구원들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며 "국내 대기업이 인재를 데려오려면 그들에게 차별화된 비전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너제이에 걸쳐 조성된 첨단기술 연구단지.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IT업체와 벤처기업을 포함해 40만여개 업체가 모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