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동 시장에서 17평(56㎡)짜리 삼겹살집을 운영하던 이봉현(48)씨는 지난달 19일 가게 문을 닫았다. 올봄까지만 해도 이씨 식당은 1인분에 5000원인 싼 가격 덕에 손님들로 북적였다. 손님이 끊기기 시작한 건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이후다. 단체 손님들은 예약을 취소했고, 단골손님들도 발길을 끊었다. 저녁마다 빈자리가 늘면서 매출은 70% 이상 뚝 떨어졌다. 이씨는 "세월호로 인해 내 삶이 바뀌었다"며 "일용직이라도 구해보려고 인력시장을 기웃거리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캄캄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100일이 훌쩍 지났지만 내수(內需) 시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전국적인 애도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전히 지역 축제나 행사를 꺼리고, 기업들도 선뜻 대규모 대외 행사 재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반 시민들마저 씀씀이를 줄이면서 내수 의존도가 높은 영세상인들과 골목상권이 직격탄을 맞았다. 생업(生業)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서민들을 위해서도 이젠 세월호를 딛고 일어서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내수 침몰'에 우는 서민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민간소비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당초 예상보다 각각 0.3%포인트, 0.1%포인트 하락할 전망이다. 김민정 연구위원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내수 침체로 경제 하락의 고통은 서민 자영업자에게 집중될 것"이라며 "요식업과 운송·숙박·여행 업종에 대한 지원 대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 왼쪽)내수침체로 건설 경기가 악화되면서 썰렁해진 청계천 공구상가 거리. (사진 오른쪽)세월호 참사 이후 손님이 줄어든 한 식당 모습.

실제 관광버스 회사들은 예약이 대거 취소되면서 망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대전 서구에서 관광버스회사를 운영하는 서모(62)씨는 "내 주변만 해도 사고 이후 망한 버스회사가 두 곳이나 된다"며 "우리도 한 달에 버스를 굴리지도 못하는 날이 20일이 넘는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에서 도시락가게를 하는 윤대웅(56)씨는 "소풍·축제·공공기관 행사가 모두 취소돼 수입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70%나 줄었다"고 울상을 지었다.

근처에 삼성그룹과 법원·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의 해산물 전문점도 대기업 직원들과 공무원의 단체 회식이 줄면서 매출이 평소의 20% 수준으로 급감했다. 강모(49) 사장은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에도 4~5일 정도 장사가 안되다가 바로 회복됐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기미가 안 보인다"고 답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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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진도군도 여름 휴가철에 추석 대목까지 앞두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진도군에서 배추 농사를 짓는 박모(56)씨는 "채소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명절 분위기도 안 난다"며 "주변 어부들은 바다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관광객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도군청은 올여름 관광소득과 어업소득 피해액이 89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소기업 정상가동률 고작 39.5% … 2012년 7월 이후 最低

지난 1일 오후 서울 청계천변(邊) 공구상가는 평일인데도 서너집 건너 한 집씩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 중 절반은 '가게 내놓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곳 상점들은 대부분 중소 제조업체나 건설·인테리어 업체들을 상대로 드릴이나 절삭기 등의 공구를 판매하는 곳이다. 하지만 제조업체들이 물건 생산량을 줄이거나 공장 운영을 중단하면서 공구 수요도 대폭 줄었다. 공구 도매상을 운영하는 유재근 대표는 "보통 매년 3~7월이 중소기업들이 물건을 많이 사가는 대목인데 올해는 4월부터 발걸음이 뚝 끊겼다"고 말했다. 15년째 상점을 운영한다는 양철형(52)씨도 "올해처럼 장사가 안된 적은 처음"이라며 "데리고 일하던 직원들도 내보내고 월 300만원인 임대료도 간신히 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가동률이 떨어지자 이 상가들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7월 전국 1500개 중소기업 중 공장 시설을 80% 이상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업체는 39.5%로 2013년 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소비자들이 지출을 늘릴 수 있도록 분위기가 쇄신되지 않으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줄도산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