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Amazon)이 무제한 전자책 구독 서비스 '킨들 언리미티드(Kindle Unlimited)'를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시작했다. 이용자들은 매달 9.99달러만 내면 60만 권 이상의 전자책(E-Book)과 수천 권의 오디오북(Audio Book)을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라면 군침을 흘릴 만한 서비스지만, 대형 출판사 사이에서는 아마존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5대 출판사 중에는 스크리브드(Scribd), 오이스터(Oyster) 등 디지털 출판 분야 스타트업들에는 전자책을 제공하더라도 아마존에는 인기 도서를 공급하지 않겠다는 방침까지 세우고 있다.

킨들 언리미티드의 성공은 아마존이 대형 출판사의 견제를 어떻게 돌파하느냐, 또 아마존 서비스에 우호적인 작가를 얼마나 많이 늘리느냐에 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의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아마존 캡처 (동영상 보기: http://www.youtube.com

아마존과 수년째 전쟁 중인 대형 출판사 '냉담'

대형 출판사들이 이번 무제한 서비스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셰트(Hachette), 맥밀런(Macmillan), 펭귄 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 하퍼콜린스(Harper Collins), 사이먼앤슈스터(Simon&Schuster) ‘빅5’ 출판사들은 아마존 무제한 서비스에 전자책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빅5 출판사 중 하퍼콜린스와 사이먼앤슈스터는 스크립드·오이스터 등 스타트업이 만든 무제한 서비스 업체에는 전자책을 제공 중이다. 아마존을 견제하는 데 스타트업을 활용하는 모양새다. 현재 스크립드와 오이스터는 40만~60만종의 무제한 전자책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피스컬 타임스(Fiscal Times)는 “빅5 출판사의 콘텐츠가 없으면 아마존이 스크립드·오이스터 등 다른 경쟁사들과 맞붙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주요 출판사들이 아마존을 빼고 오이스터나 스크립드에만 콘텐츠를 주기로 하면, 아마존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도 선점할 수 있다고 봤다. 포브스(Forbes)는 “몇 년 안에 아마존·스크립드·오이스터와 빅5 출판사들이 전자책 시장에서 나온 이윤을 적절하게 나눠 가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마존은 전자책 가격과 수익배분을 놓고 주요 출판사들과 수년간 마찰을 빚어왔다. 아마존은 2007년 이후 출판사가 아무리 비싼 가격에 전자책을 내놓더라도 정작 소비자들에게는 9.99달러(약 1만원) 정가에 판매해 출판사들로부터 원성을 사왔다. 출판사 입장에선 ‘전자책은 10달러도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장기적으로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년 후 애플은 아이패드 출시와 함께 출판사들에 가격 결정권을 주는 대신 수익의 30%를 가져가는 ‘에이전시’모델을 들고 나왔다. 아마존의 낮은 전자책 가격에 불만이던 출판사들은 대체로 이 제안을 반겼다. 출판사 대부분이 아마존과의 전자책 계약을 9.99달러 정가제에서 에이전시 모델로 바꾸길 원했다.

그러나 아마존은 이런 출판사의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빅5’ 출판사 중 한 곳인 맥밀런(Macmillan)이 아마존에 에이전시 모델로의 계약 변경을 요구했지만, 아마존은 맥밀런이 펴낸 책 수천 종을 진열대에서 빼버리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올해 5월에는 또다른 대형 출판사 아셰트(Hachette)의 종이책 5000종을 판매 중단하고 배송을 늦춰 원성을 샀다. 아마존과 아셰트는 당시 전자책 수익배분 문제로 협상 중이었다. 이처럼 아마존은 출판사들이 전자책 판매와 관련된 제반 조건들에 합의하지 않으면 해당 출판사의 책을 팔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출판사들에 압력을 가해왔다.

아마존의 저가 정책, "독서 문화 위협할 것"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가 책 생태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아마존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아마존은 킨들 언리미티드 서비스로 얻은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출판업계 분석 사이트 퍼블리셔스 런치(Publisher’s Lunch)에 따르면 아마존의 자가 출판 플랫폼 KDP(Kindle Direct Publishing)를 이용해 출판한 작가들은 ‘풀(Pool) 방식’에 따라 인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풀 방식은 아마존이 서비스 가입자 수에 따라 설정한 총 인세를 전체 책의 대여 횟수로 나누고, 이렇게 산정된 단위 가격을 개별 전자책이 독자들에게 대여된 횟수만큼 곱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서 전자책의 원래 가격은 고려되지 않는다.

반면 일반 출판사들은 책이 다운로드 될 때마다 개별 전자책 가격 대비 인세를 작가에게 지급한다. 종이책과 같은 방식이다. 미국의 전자출판 관련 매체인 디지털 북 월드(Digital Book World)는 “일반 출판사들이 펴낸 책이 자가 출판된 책보다 많은 인세를 지급받게 되는 불공정 수익분배 구조”라며 “자가 출판 작가들이 고통받게 될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전자책 자가 출판 플랫폼인 스매쉬워즈(Smash Words)의 설립자 마크 코커(Mark Coker)는 허핑턴포스트(Huffington Post)를 통해 “아마존이 자가 출판 콘텐츠를 오직 아마존에서만 판매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존이 경쟁사 콘텐츠를 줄이고, 자사의 콘텐츠를 늘리려는 의도라는 것.

이런 계약방식은 전체 출판 시장에서 아마존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할 순 있지만, 독서 시장 전체로 보면 독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독립서점 북패시지(Book Passage)의 일레인 페트로셀리(Elaine Petrocelli) 회장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F Chronicle)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이 아셰트의 책을 보지 못하게 한 것처럼 특정 책을 읽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킨들 언리미티드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들. 아마존의 자가출판 플랫폼(KDP)을 이용해 출간한 책은 킨들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아마존의 무한 질주가 성공한다면?

아마존이 각종 견제를 극복하고 킨들 언리미티드를 성공하게 만든다면 세계 전자책 시장에서 아마존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이미 글로벌 전자책 시장에서 점유율이 60%를 넘는다.

영국의 소설작가 찰리 스트로스(Charlie Stross)는 “아마존이 소비자들에게는 독점적인 공급자, 출판사들에는 독점적인 구매자가 되려고 한다” 고 말했다.

아마존은 출판사와 전자책 계약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개인 금융투자 자문 웹사이트 모틀리 풀(motley fool)은 “아마존이 무제한 서비스로 10억달러(약 1조 380억원) 정도 새로운 수익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마존 회원들 역시 아마존 콘텐츠 생태계에 더욱 몰입하게 돼 파이어폰·파이어TV 등 다른 제품의 판매량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여기에 참여하지 않은 주요 출판사들의 매출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러셀 그랜디네티(Russell Grandinetti) 아마존 킨들 부문 선임 부사장은 지난달 초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책의 경쟁 상대는 책이 아니라, 캔디크러쉬와 트위터· 페이스북·영화 스트리밍·무가지 신문 등이다”라며 무제한 서비스의 필요성을 밝혔다.

아마존의 정책을 지지하는 작가도 있다. 미국의 작가 조지 앤더스(George Anders)는 포브스(Forbes) 기고에서 “전자책 가격은 종이책보다 싸지만, 작가가 받는 인세는 종이책과 똑같다”며 “비싼 종이책 대신 싼 전자책을 찾는 독자들이 늘어나면 전체 작가들이 받는 인세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기존 출판 방식은 일부 스타 작가에게만 유리한 구조지만, 무제한 서비스가 정착되면 무명작가들의 작품들도 빛을 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최근 성장세가 가팔라졌지만, 전체 도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2%에 불과하다. 전 세계 도서 시장에서 전자책 비중은 약 13%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자책 시장이 더디게 열리는 편이다. 국내 출판업계는 최근 불거진 아마존의 국내 시장 진출 가능성과 맞물려 킨들 무제한 서비스에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전자책 확산의 계기로 작용하겠지만, 아마존의 영향력이 커질 경우 출판 업계에 미칠 판도 변화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서 킨들 무제한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국내에서도 전자책 업체들끼리 이북을 서로 대여해주는 서비스에 대해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독자 수를 늘리는 데는 무제한 서비스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특정 업체가 시장 독점력을 강화하는 데 쓰인다면 오히려 출판 생태계를 파괴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