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외국인 카지노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하얏트리젠시 호텔 카지노 벨루가에서 중국인이 거액을 땄으나 카지노 측이 사기도박이라며 돈을 주지 않아 카지노와 중국인이 서로 맞고소 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중국인 려모(49)씨 등 4명은 바카라 게임을 해 11억여원을 땄다. 하지만 카지노 측은 중국인들이 카지노 내부 직원과 공모해 2시간 만에 거액을 땄다며 사기도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내부직원이 누구인지, 어떤 방법으로 사기도박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꺼렸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제주공항에서 ‘카지노가 돈을 주지 않는다. 카지노에 가지 말라’며 피켓 시위까지 벌였다. 경찰에 카지노를 협박 혐의로 고소하고, 자신들이 딴 돈을 달라는 민사소송을 냈다. 카지노 측도 이들 중국인을 상대로 사기도박 혐의로 경찰에 맞고소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한 호텔 내 외국인 카지노 영업장 모습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제주도 내 카지노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국인 카지노는 전국에 16곳이 있다. 이 중 절반인 8개가 제주도에 몰려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보니 제주도 내 외국인 카지노의 경영상태는 부실한 곳이 대부분이다. 파라다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 매출액이 300억원대 미만인 영세 카지노다.

불투명한 운영과 탈세, 경영권 분쟁 등으로 신뢰가 저하된 점도 이들 카지노의 부실경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해 제주 신라호텔 카지노의 경우 전 소유주 김재훈씨가 분식회계를 통해 220억원의 매출을 누락한 사실이 국세청 세무조사 결과 드러났다. 최근 부산지방국세청은 제주 신라호텔 카지노에 33억6871만원(가산세 포함)의 법인 소득세를 부과했고, 전 대표 김씨에게 73억6697만원의 원천징수 세금을 부과했다. 김 전 대표는 현재 카지노 운영기업 제이비어뮤즈먼트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제주 외국인 카지노 현황과 경영실적

하얏트리젠시 내 카지노는 구속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전 소유주로 현재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미래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위기에 몰리자 김 회장은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기 하루 전 이 카지노를 110억원에 매각했는데 여러 사람과 다중계약을 맺어 문제가 불거졌다.

더케이 제주호텔 내 카지노는 전 대표인 은인표 회장이 직원 명의로 은행에서 14억7000만원을 불법대출 받은 혐의 등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과 사기도박 사건에 연루된 하얏트 호텔 내 카지노 벨루가

제주 내 외국인 카지노들은 외국인 VIP 유치를 위해 대부분 에이전시를 이용한다. 일종의 브로커 같은 역할이다. 큰 손을 카지노에 데려 오면 매출의 80% 가량을 중국 에이전시 업체에 넘기는 구조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에이전시 없이는 영업이 안될 정도다.

지난 24일 오전 제주도 내 외국인 카지노 세 곳을 둘러봤더니 외국인 고객은 10명 내외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외국인 카지노가 허가될 경우 기존 영세 카지노의 경영상황은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제주이호유원지 조성사업에 초대형 카지노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신화역사공원 개발사업자인 란딩그룹이 하얏트호텔 카지노를 인수했다는 소문이 돌자 제주도민들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제주 신라호텔에서 운영중인 카지노 마제스타. 외국인이 많지 않아 한가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자본들의 카지노 계획은 단순히 외국인 카지노의 문제를 떠나 내국인 카지노 논란을 수면위로 부상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외국인 카지노가 공급과잉인 상황에서 결국 중국 투자자들은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하는 오픈카지노를 요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카지노의 지역경제 기여도가 미미하다는 점도 도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키우고 있다. 관광지와 지역상권에 지출돼야 할 여행경비가 카지노에 몰리기 때문이다. 카지노 도박은 현금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세액을 잡기 까다로워 세금환수가 불투명하다는 문제도 있다. 대기업과 외국자본만 득을 보고 지역경제는 침체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제주도가 중국자본의 부동산 장사와 도박노름에 춤추고 있는 꼴”이라며 “중국자본이 도민사회에 반하는 개발 행위를 이어가고 있는데 대해 단호하게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한 중국 자본은 절대 카지노 계획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시 그랜드호텔 내 외국인 카지노 파라다이스. 외국인 고객이 10여명 안팎으로 한산했다.

제주도청은 신규 카지노 허가보다 이미 영업하고 있는 외국인 카지노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을 선결과제로 보고 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신규 카지노 허가를 논하기 보다 이미 있는 외국인 카지노에 대한 관리 감독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카지노 감독기구 등을 만들어 사행산업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카지노를 신규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다. 원희룡 도지사 취임 전부터 계획돼 온 것인만큼 사업 방침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강기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대표는 “(외국인 카지노 사업은)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며 “이미 2년 전부터 제주도와 ICC, 도의원들 간에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카지노는 원희룡 도지사 취임 전부터 계획된 것으로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사업”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