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사레'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충북 음성군의 복숭아는 올해 출하 시기가 작년보다 열흘 이상 빨라졌다. 작년에는 첫 출하가 7월 22일이었는데, 올해는 7월 10일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복숭아는 통상 6월 말 전북 남원·임실·전주 등 남부권 산지에서 출하를 시작하고, 7월 중순 경북 김천·상주를 거쳐 7월 하순 음성·경기 동부 등 중부권으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산지가 서서히 북상한다. 특히 7월엔 출하 물량이 늘면서 여름 대목을 맞아 가격도 올라 복숭아 농가들로선 신바람이 나는 시기였다. 그런데 올해는 180도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날이 더워 복숭아가 너무 일찍 쏟아지면서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햇사레 과일조합 공동사업장에서 주민들이 수확한 복숭아를 선별하고 있다. 올해 이상 고온으로 남부 주요 산지의 출하가 끝나기도 전에 음성군 등 중부 지역에서도 출하가 시작돼 물량이 몰리면서 복숭아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지난 17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의 한 복숭아 농가에서 만난 성기철(48)씨는 탐스럽게 익은 벌건 복숭아들이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을 둘러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과수원 옆 조합 공동 작업장에는 크기별로 분류된 복숭아가 담긴 상자들이 어른 키 높이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성씨는 "올해는 무더위와 마른장마로 복숭아가 너무 일찍 익어버린 탓에 수익이 작년보다 35% 정도 줄어들게 생겼다"고 푸념했다.

◇복숭아 전국 30개 주요 산지 중 28곳 출하 시기 겹쳐

본지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공동으로 전국의 복숭아 산지 30곳의 출하 시점을 조사해 봤더니, 28곳에서 출하 시점이 예년보다 짧게는 3~4일씩, 길게는 열흘까지 빨라졌다. 예컨대 강원 춘천, 경기 여주, 경남 진주, 경북 김천·상주 등의 경우 복숭아 출하 시점이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빨라졌다. 올여름 전국의 기온이 평년 대비 1도가량 상승하고 장마가 열흘가량 늦어지면서 강수량은 예년의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영향이다.

이에 따라 전국 주요 산지에서 복숭아가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서울 가락시장에는 6월 하순(21~30일)에만 820t의 복숭아가 반입되면서 작년 같은 기간(620t)보다 32%가량 물량이 급증했다. 특히 이달 초부터 16일까지는 하루 평균 200t의 복숭아가 몰렸다. 작년의 2배 이상 물량이다. 이 결과로 복숭아 가격은 폭락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26일 서울 가락시장에서 도매 거래된 백도 가격은 4.5㎏ 상자당 1만6160원('상'품 기준)으로 작년(2만2915원)보다 29%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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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과 토마토 등 과채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박은 열흘가량 출하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초여름부터 경남 함안·의령 등 남부권과 충북 진천·음성 등 중부권 물량이 겹치는 홍수 출하가 이뤄졌다. 5월 21일부터 6월 20일까지 한 달 동안 가락시장 반입 수박 물량은 2만700t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8% 늘었다. 이 때문에 지난달 가락시장 도매 수박 가격은 작년 대비 30%가량 폭락했다.

홍수 출하 이은 '거래 절벽' 우려도

이처럼 전국적으로 동시에 출하가 이뤄지면서 물량이 쏟아지다 보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다음 달부터 추석(9월 8일) 때까지 일시적으로 산지 출하 물량이 급감하는 '거래 절벽'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 일부 중부권 산지에서 이른 출하로 1차 재배한 수박 물량이 거의 소진되면서 가락시장의 반입 물량은 지난 21일 917t에서 26일 382t으로 뚝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단기적으로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농협 청과사업단 조경환 팀장은 "여름 과일은 저장이 불가능해 정부가 대량 수매하기 어렵다"며 "소비자와 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과일 소비가 늘어야 농가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