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습니다. 연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작은 변수라고 하시니 다음으로 넘어가도 될까요?”

25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2013년도 자동차 에너지소비효율 사후관리 조사 결과 공개토론회’ 좌장을 맡은 서울대 민경덕 교수는 아우디 폴크스바겐 그룹 독일 본사에서 온 슈텐델 데틀레프 기술이사의 말을 끊었다. 통역기로 민 교수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데틀레프 이사는 머쓱한 듯 쓴 웃음을 지었다.

데틀레프 이사는 산업부 산하 연비 측정기관인 석유관리원과 환경공단의 연비 측정 결과와 관련해 다른 수입차 업체만큼 변수 통제가 제대로 됐는지를 묻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부 산하 연비 측정기관 관계자들은 ‘정부 측정 결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패널로 참석한 교수들도 “정부의 측정 결과는 틀림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전에 정부와 입을 맞춘 듯한 느낌을 줬다.

◆ 연비 과장 지목 수입차 업체들 “정부 측정 결과 신뢰하기 어렵다”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부가 연비가 과장됐다며 지목한 수입차 업체 4곳(BMW, 아우디, 폴크스바겐, 크라이슬러)과 산업부 산하 연비 측정기관 4곳(자동차부품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석유관리원, 한국환경공단), 전문가가 모여 토론회를 열었다.

산업부가 25일 진행한 에너지 소비효율 사후관리 조사 결과 공개토론회 모습

토론회였지만 토론이나 소통은 없었다. 수입차 업체가 제기하는 의혹에 일방적으로 ‘정부 결과가 맞다’고 전달하는 자리 같았다. 수입차 업체들은 연비 과장에 따른 과징금 처벌 전 마지막 소명 자리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했다. 산업부 산하 연비 인증기관의 측정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아우디 폴크스바겐 스텐달 데틀레프 기술담당 이사는 “환경공단의 1차 시험에서는 도심 연비가 합격이었는데 2차 자동차 부품 연구원의 시험에서는 도심 연비가 오차 범위를 넘어섰다고 나왔다”며 “들쭉날쭉한 조사 결과를 신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BMW 코리아의 김재윤 매니저는 ”시험시설의 차이, 시험 주행 운전자의 성향, 측정실의 온도, 측정일 당시 외부 기온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측정값은 달라질 수 있다”며 “작은 변수들이 모여 큰 차이가 나는데 변수 등이 제대로 통제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25일 진행한 에너지 소비효율 사후관리 조사 결과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 모습. 일자형 자리배치처럼 업계와 정부 관계자간의 의견 교환은 없었다

크라이슬러 윤시오 전무는 “차량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연비 실험 자체도 정부의 법규를 그대로 따랐는데 1차와 2차 연비 결과가 다른 점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연비 측정기관 관계자들은 ‘수입차 업체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모든 내용들을 일축했다. 정부의 측정 방식, 변인 통제 등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한국기계연구원 오승묵 연구실장은 “33개 차종 중 4개 업체만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시험 기관이 변인 통제를 제대로 못 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석유관리원 김기호 팀장은 “연비 측정 당시 실험실 온도는 외부 온도와 관련 없이 25도 수준을 유지했다”며 “실험 당시 수입차 업체 관계자들도 참여해 온도 변인이 일정하게 통제된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부 측은 수입차 업체들이 연비 측정에 오류를 범해 놓고 연비 정부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주대 이종화 교수는 “연비 시험절차와 방법은 하루아침에 바뀐 게 아니라 수십년간 기술적 연구를 통해 만들어온 것이고,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답했다.

산업부 김권성 에너지수요관리협력과 과장은 “2012년 도심과 고속도로를 나눠 연비를 측정하는 신연비제도를 도입하게 되면서 관련 규제가 엄격해졌다”며 “오차 범위를 초과하는 차종 들이 많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연비 과장으로 과징금을 받은 현대차 싼타페에 대해서는 연비가 과장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아우디, BMW, 크라이슬러 관계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연비 과장으로 문제된 적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 산업부 “추가 테스트는 없다…과태료 불복 조치 등 제기하라”

산업부는 이번 토론회를 끝으로 수입차 업체들의 연비 과장 논란을 끝내겠다는 입장이었다.

산업부 김권성 과장은 “수입차 업체들을 위해 추가로 연비 테스트를 할 계획은 없다”며 “시시비비를 추가로 더 가리고 싶으면 과태료를 불복하기 위한 절차에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가 수입차 업체들의 마지막 소명자리였지만 토론의 진행 방식이나 패널 구성 등은 산업부에 유리하게 구성됐다. 수입업체 3곳은 2명씩 총 6명이 패널이 참여했다. 반면 정부 측은 연비 측정기관 관계자 5명, 전문가(교수) 3명 총 8명이 패널이었다. 특히 전문가로 참여한 대학교수들은 반복해서 “우리나라 인증기관 결과는 세계적 수준에 잘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행사가 끝나고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세계 각국에서 자동차를 팔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무조건 옳으니, 싫으면 떠나라’는 식으로 말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