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BMW의 520d 모델을 산 김모씨는 고향인 부산에 갈 때마다 콧노래가 나온다. 출발 전 주유소에서 8만~9만원을 주고 경유 60L를 주유하면 서울·부산 900㎞가량을 왕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3명의 KTX 왕복 가격(27만~30만원)과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다. 4~5시간 운전하는 게 힘들긴 하지만 리터당 16.9㎞의 고연비 덕에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장거리 여행 때도 차를 가져간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수입 세단 BMW 520d 모습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매일 왕복 70㎞ 정도를 출퇴근하는 이모씨는 하이브리드 차량인 렉서스 ES 300h를 구매한 이후 기름 값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기존 구형 제네시스(복합연비 리터당 8.5~9.4㎞)를 탔을 때는 10만원씩 2주에 3번 정도 주유를 했다. 하지만 ES 300h(복합연비 리터당 16.4㎞)를 타면서 2주에 1번 정도 주유를 하고 있다. 이씨는 “최근 강원도를 여행하고 왔는데 300㎞ 정도를 주행하고서도 주유 게이지가 1칸 반 정도밖에 줄지 않았다”며 “고연비에 놀랐고 기름 값을 아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원동력은 연비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빚어낸 고연비 차량에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느슨한 연비규제와 ‘뻥 연비 봐주기’의 영향으로 기술 개발에 뒤진 국산차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 연비 좋고 가격 착한 수입차 질주 ‘무섭네’

자영업을 하는 이모씨는 최근 차를 바꾸기 위해 기아자동차영업소를 방문했다. K7 2.4 GDI 가격은 2900만원 후반이었다. 닛산자동차 영업소를 방문해 중형 세단 알티마 2.5 휘발유 모델의 가격을 알아봤더니 3270만~3350만원 선이었다. 이씨는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상황에서 연비는 알티마(리터당 13.3㎞)가 K7(11.3㎞)보다 높은데다 주행 성능도 더 뛰어나고 잔고장도 없다고 해서 알티마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닛산의 알티마 모습

이씨처럼 최근 수입차를 사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10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동차 신규 등록 현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규 등록된 승용차 84만4699대 중 수입차는 10만5898대로 12.5%를 차지했다. 6월 점유율은 12.7%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수입차의 6월 판매량은 전년대비 39.2% 증가했다. 반면 국산차 6월 판매량은 전년 대비 6.9% 늘어나는데 그쳤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 상승률이 높았던 15개 차종들. 벤츠 S클래스 등 신차 출시효과나 가격 할인 모델을 제외한 대부분 차종이 고연비 차량이다

수입차가 잘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성능이다. 특히 연비가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늘었다. 차 값을 조금 더 주더라도 연비가 우수한 차를 구입해 유지비를 줄이면 ‘본전’을 뽑을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디젤로 대표되는 독일과 하이브리드로 대표되는 일본차 연비는 국산차보다 20~30%가량 높다.

BMW의 320d 모델 중에는 복합연비 19.7㎞ 차량도 있다. 3시리즈 투어링 모델의 연비는 17.5㎞다. 대형차인 730d 모델의 연비도 15.2㎞다. 740d는 1리터로 14.4㎞를 간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E클래스 모습

메르세데스 벤츠의 E220 CDI 아방가르드 모델은 1리터로 16.3㎞를 달린다. 벤츠가 새롭게 출시한 C클래스 220 블루텍 아방가르드는 복합 연비가 리터당 17.4㎞다. 폴크스바겐의 준중형 차량 골프 1.6 TDI는 18.9㎞, 소형차 폴로의 연비는 18.3㎞다. 준중형차 제타 1.6 TDI BMT는 리터당 19.1㎞를 간다.

도요타의 경우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리터당 21㎞), 캠리 하이브리드(리터당 16.4㎞)가 대표적인 고연비 차량이다. 렉서스의 CT200h는 리터당 18.1㎞를 가고 ES 300h는 16.4㎞를 간다.

최근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 국내 차량 제조사들은 신차를 내면서 가격을 올려 왔고 수입차들은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해 가격을 내리면서 격차가 줄었다.

렉서스 CT200h 모습

현대자동차의 신형 제네시스(4660만~7210만원)의 가격이 메르세데스 벤츠의 E클래스(6030만~9440만원)와 아우디의 A6(5850만~8250만원), BMW 5시리즈(6290만~1억2890만원)와 비슷한 것이 좋은 예다.

연비가 좋은 수입차는 판매도 잘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상반기 차종별 신규 등록 대수 증가율 상위 15위 중 수입차가 12개를 차지했다. 폴크스바겐 골프·제타, 아우디 A6(2.0 디젤 연비 리터당 15.9㎞), 벤츠 E클래스, BMW 3시리즈, 렉서스 ES 등 대표 고연비 차량이 순위에 많았다.

◆ 발등에 불 떨어진 국산차…한 발 더 앞서가는 수입차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다퉈 고연비 자동차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그랜저 디젤 2.2 모델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3.8~14㎞다. 기존 그랜저 2.4 휘발유 모델(11.3㎞)과 비교했을 때 연비는 개선됐다. 하지만 수입 독일 디젤 세단과 비교했을 때는 연비가 20~30%가량 낮은 편이다. 르노삼성차는 최근 리터당 16.5㎞를 갈 수 있는 SM5 디젤 모델을 선보였다. 기존 SM5(12.6㎞)보다 약 30% 가까이 연비는 개선됐다.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디젤 모습

뛰는 국산차 위에 나는 수입차가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 4일 리터당 24.3㎞(유럽기준)를 가는 중형 세단 파사트의 8세대 신형 모델을 사전 공개했다. 닛산이 올해 국내 출시 예정인 SUV 캐시카이는 유럽 기준으로 리터당 21.7~26.3㎞의 연비를 기록했다.

도요타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프리우스 PHV가 최근 지옥의 서킷으로 알려진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리터당 247㎞의 획기적인 연비를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폴크스바겐은 리터당 111㎞를 가는 콘셉트카 XL1을 공개한 바 있다.

리터당 111km를 가는 폴크스바겐의 XL1 모습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뒤늦게 디젤 세단 경쟁에 발을 들인 것 자체가 그동안 연비와 관련해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연비가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