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회장, 정용진 부회장.

'백화점 식품관 전성(全盛)시대'가 열리고 있다. '짜장면·비빔밥·냉면·우동'처럼 쇼핑 고객이 간편하게 끼니를 때우는 식당 위주이던 백화점 식품관이 지방 골목시장부터 해외 유명 레스토랑까지 '검증된 유명 맛집'들로 속속 채워지고 있다. 이를 위해 오너와 최고 경영자(CEO)들이 직접 맛집 유치에 나서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백화점 VIP 고객을 줄 세우는 유일한 품목은 고가(高價) 명품(名品)이 아니라, 광장시장 빈대떡, 부암동 만두 같은 식품관 맛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오너부터 유명 식당 入店 총력전

올 3월 현대백화점 서울 무역센터점에서 일어난 '닭강정 대란(大亂)'이 이를 보여준다. 당시 강원 속초 중앙시장의 명물인 '만석 닭강정' 한정 판매 행사가 열렸을 때, 손님들이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닭강정을 5~10박스씩 사 갖고 가는 바람에 매일 1760여 마리의 닭이 팔리며 백화점 전체가 연일 북새통을 이뤘던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도 같은 달 서울 남대문시장의 '가메골 손왕만두' 행사에서 고객이 한꺼번에 몰려 대소동이 벌어졌다. 요리 연구가 박종숙씨는 "옛날에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빙수집 '밀탑' 정도가 찾아가 먹는 맛집이었지만 이제는 백화점 지하 식품관이 백화점 총 매출을 견인하는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백화점들은 오너부터 '식품관 키우기'에 나섰다. 서울 청담동에서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는 한 요리사는 "요새 뜨는 맛집 주인들 사이에서는 신세계→현대→갤러리아→롯데 순서로 식품 담당 바이어가 찾아와 입점을 권유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트위터에 맛집 사진을 올리면 다음 날부터 신세계 배지를 단 임원·실무 직원이 줄줄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백화점 지하 식품관이 최근 골목 지역 식당에서부터 해외 유명 레스토랑까지 ‘최고의 맛집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위 사진은 ‘빵 마니아’들에게 소문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지하 베이커리, 아래 사진은 지난달 문을 연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고메 스트리트’.

신세계그룹은 실제 '팻투바하'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파워블로거 김범수씨를 신세계푸드 식음(食飮)컨텐츠팀장으로 영입했다. 현대백화점은 정지선 회장의 지시로 올해 초 해외 브랜드 판권 전문가, 유명 요리사, 식품 바이어 등 12명으로 구성된 '식품개발위원회'를 만들어 국내외 식품업계 동향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박세훈 대표 주도로 '속초 코다리냉면', 이태원 우동집 '니시키', 멕시칸 타코집 '바토스' 등 유명 맛집 19곳을 들여왔다. 2012년 당시 50여명의 백화점 직원이 6개월간 식당 214군데를 순례한 끝에 19곳을 추려냈다.

매출 증대·集客에 '최고 효자'

백화점 업계가 오너부터 임직원·외부 인사까지 동원해 맛집 유치에 나서는 것은 매출 증대와 집객(集客)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식품관 개장에 힘입어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 정도 늘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작년 8월 말 백화점 리뉴얼 이후 올 7월까지 총매출액은 16% 정도 늘었는데, 식품관 매출은 같은 기간 39% 증가해 매출 신장의 '일등공신'이 됐다.

각 백화점은 유명 식당 유치에 총력을 쏟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서울 이태원의 '핏제리아 디부자' 입점을 위해 식품 부문 총괄 임원과 팀장이 비 오는 날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가 통사정한 끝에 화덕 설치, 수수료 인하 제안을 하고 성사시켰다.

롯데백화점은 군산 최고 빵집 '이성당'을 서울 잠실점에 유치하기 위해 군산을 30번 오가며 사장을 설득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부산 센텀시티점 식품관을 5년 만에 재개관하면서 서울 동부이촌동 일식 우동집 '미타니야', 부산 국제시장 명물 '할매 유부 보따리', 오징어 먹물빵으로 유명한 부산 '이흥용 과자점'을 입점시켰다. 현대백화점 공산품팀은 서울 시청 근처 '오향족발'을 들여오기 위해 2012년부터 8개월간 이 족발집에서 팀 회식을 매월 1회 넘게 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