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14일 거액의 보상금을 내걸고 일반인의 아이디어를 모아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아이디어LG' 제도를 발표했다. 이는 그동안 한국 대기업이 선보인 바 없는 파격적인 아이디어 공모 방식이다.

일단, 아이디어 제안자의 몫으로 완성품 매출의 4%를 내걸었다. 첫 제안자 외에도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평가한 사람, 제조 과정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추가한 사람 등도 매출의 4%까지 받을 수 있다. 제품 개발에 참여한 사람들이 최대 매출의 8%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제안한 TV 신제품이 1000억원어치가 팔렸다면 제안자에게 40억원, 평가 참여자들에게 40억원을 나눠주는 것이다.

판매 이익이 아니라 매출액이 기준이기 때문에 제품 판매로 회사가 적자를 보더라도 제안자의 보상금은 보장한다. 10년 이상 팔리는 상품을 기획한다면, 이 기간에 계속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마른 LG

LG전자가 이런 파격적 제안을 내건 것은 그만큼 새로운 아이디어에 목마르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지난 수년간 기존에 없던 새로운 상품을 거의 내놓지 못했다. 옷을 말리고 악취를 제거하는 의류 관리기 '트롬 스타일러', 스마트폰에 연결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출력하는 휴대용 프린터 '포켓포토' 정도가 그나마 신상품으로 분류된다. 나머지는 대부분 기존 사업 분야 제품을 개선하거나, 다른 회사가 개척한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위 사진)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진을 뽑을 수 있는 LG전자 휴대용 프린터‘포켓포토’. 신입 사원의 아이디어로 만든 이 제품은 50만대 넘게 판매돼 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아래 사진)미국의 벤처기업 퀄키는 회원들의 아이디어들을 검토해 실제 제품으로 출시한다. 회원들이 낸 아이디어로 개발된 컴퓨터·스마트폰 선을 정리하는 기구인‘코디스’(왼쪽)와 달걀노른자를 손쉽게 분리할 수 있는‘플럭’(오른쪽)은 퀄키의 베스트셀러 제품이다.

포켓포토의 성공 경험은 LG전자가 일반인 아이디어 공모로 나아가는 데 바탕이 됐다. 이 제품의 첫 아이디어를 낸 것은 LG전자 상품기획팀 강동호 대리. 당시 그는 입사 만 1년도 안 된 사원이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인쇄해서 친지들과 나눠 갖고 싶다"는 간단한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가 사내 공모전에 낸 기획안을 토대로 만든 포켓포토는 2012년 9월 첫 제품 출시 이후로 50만대 넘게 팔렸다. 누적 매출은 500억원을 넘었다. 신입 사원이 연 매출 200억원대 신상품을 일궈낸 것이다. 강 대리가 만약 일반인으로서 이번 '아이디어LG' 제도에 응모해 채택됐다면 해마다 8억원씩을 보상금으로 받아갈 수 있다.

글로벌 기업도 공유 개방 강조

일반인의 아이디어를 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대표 주자는 미국 벤처기업 '퀄키(Quirky)'다. 이 회사는 아이디어 회원 100만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회원들은 매주 4000개의 신제품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주요 아이디어에 대해 디자인, 제품 설계 과정에 조언을 할 수도 있고, 투표를 통해 최종 상품화 대상이 정해진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자유롭게 구부러지는 멀티탭 '피봇 파워(Pivot Power)', 달걀노른자 분리기 '플럭(Pluck)', 컴퓨터·스마트폰 케이블 정리 기구 '코디스(Cordies)' 등이다. 피봇 파워는 지난 3년간 전 세계에서 총 7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의 최초 아이디어를 낸 미국 뉴욕 시민 제이크 진(Zien)씨는 44만5865달러를 보상금으로 받았다. 벤 코프만 퀄키 CEO는 "회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 덕분에 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며 "회원 커뮤니티는 우리 회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인터넷 회사 구글도 일반인 아이디어 활용에 앞장서고 있다. 구글이 개발하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는 일반 개발자들이 참여하는 '오픈 소스(open source)' 방식으로 개발된다. 또 'X를 풀어라(Solve for X)'란 프로젝트로 외부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데도 열을 올리고 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 P&G 역시 외부 의견을 바탕으로 개발하는 상품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여러 사람이 머리 맞대야 혁신

LG전자가 만든 아이디어 제안 제도도 퀄키와 비슷하다. 아이디어LG에 참여하려면 홈페이지(idealg.co.kr)에 접속해 전기·전자·생활·사물인터넷 등에 관한 '독창적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된다.

아이디어LG에 제출한 기획안이라도 제품을 완성해 출시하지 못할 경우, LG전자는 일체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최초 제안자가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스스로 회사를 차려 제품을 만들거나, 다른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최상규 LG전자 한국영업본부장(부사장)은 "누구나 혁신의 씨앗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제품으로 만들 기회는 제한적이었다"며 "LG전자가 가진 상품 개발 체제와 외부 아이디어를 결합해 더욱 빠른 속도로 혁신적인 상품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