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채권단의 출자전환 결정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팬택에 대한 지원 조건으로 이동통신 3사의 출자전환을 요구하면서, 팬택의 숨줄을 이동통신사들에게 떠넘겼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한국의 벤처 신화를 일군 팬택을 법정관리로 내몰았다는 비난 화살을 피하려는 ‘폭탄돌리기’식 미봉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0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팬택본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준우 팬택 대표(가운데) 및 경영진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이날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는 이통사의 출자전환을 부탁했다.

팬택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협의회는 이동통신3사가 팬택의 출자전환 참여 여부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면서, 출자전환 시한을 이달 14일까지 연기했다. 채권단이 출자전환 시한을 연장한 것은 이달 4일을 8일로 한 차례 연장한 뒤 두번째다.

◆ 팬택 채권단, 끈질긴 ‘구애’…왜 이통사 붙잡나

팬택 채권단이 이통사를 출자전환에 끌어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채권단이 팬택에 받을 3000억원을 출자전환해도 지금 같은 판매량으로는 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팬택 매출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나오는 만큼 이동통신사들의 도움은 절실하다.

이동통신사가 1800억원의 출자전환에 나설 경우 채권단이 짊어지고 있는 위험을 분산할 수 있게 된다. 또 이동통신사들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조금을 풀어 팬택 스마트폰 판매에 나설 것이란 계산도 깔려있다.

홍기택 KDB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간담회에서 향후 운영계획을 말하고 있다. 조선DB

채권단으로서는 이동통신사들이 출자전환에 참여하면 손해볼 일이 없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을 통해 기업 회생에 나서면 된다. 반면 이동통신3사가 마지막까지 출자전환에 참여하지 않아 팬택이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채권단은 따가운 여론의 시선을 이들 이동통신사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채권단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치밀하게 짜인 각본"이라며 "조건만 보더라도 자신들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주판을 두드린 흔적이 보인다"고 말했다.

◆ 이통사의 침묵은 ‘부정’…팬택, 제2의 쌍용차 되나

이동통신사들은 여전히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놓인 팬택에 대한 처분을 두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동통신사가 출자전환을 거부하게 되면 채권단이 제시한 30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 계획도 없던 일이 된다. 팬택은 채권단이 상환을 유예했던 자금을 갚아야 한다.

채권단이 일단 시간여유를 줬지만 이동통신사들이 팬택 살리기에 나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 이동통신사의 고위 임원은 “침묵은 곧 참여 거부를 뜻하는 것”이라며 “가만히 있는 이동통신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채권단의 횡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왼쪽), 황창규 KT 회장(가운데),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오른쪽).

이동통신사들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아직 거부 의사를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은 것도 채권단의 의도대로 팬택의 생사가 이동통신사의 손에 결정됐다는 사회적 비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1800억원은 이동통신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며 “문제는 그 이후”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보유한 팬택의 재고만 해도 70만대로 금액만 한 분기 매출인 3000억원에 이른다. 출자전환이 순조롭게 이뤄진다해도 재고 순환을 위해서는 여유 자금이 필요하고 지금의 자금력만으로는 향후 영업활동을 활발히 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정관리인이 투입된 뒤 채권단과 이해 관계자의 의견에 따라 자체회생, 매각, 파산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출자전환마저 포기한 채권단이 단독으로 팬택의 회생을 도울리는 만무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결국 파산하거나 제 3자에게 헐값에 매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현재까지 팬택 인수자로는 중국, 인도 업체들이 유력하게 꼽히고 있다. 자국 내에서 저가 스마트폰을 무기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팬택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기술과 미국 AT&T 등과 연결되는 유통망이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업계 관계자는 “이들 외국계 기업이 팬택을 인수할 경우 쌍용자동차처럼 기술만 빼가는 먹튀 논란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효과도 없는 영업정지 명령을 내려 3위 제조사를 어려움에 빠뜨린 정부와 기업회생 의지가 부족한 산업은행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책임을 벗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