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정 기자


#장면 1
지난해 7월.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국내 최초로 액티브엑스(Active X)와 공인인증서 없는 간편한 결제방식을 내놓았지만, 현대카드는 새 결제 시스템을 지원하지 않았다.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가 트위터에서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에게 "현대카드는 언제 지원할 것이냐"고 물었고, 정 사장은 "말씀하신 결제방법은 규제상 허용되는 안전한 방법이 아니다"고 답했다. 트위터 논쟁 이후 현대카드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카드사가 알라딘의 새 결제시스템을 지원하지 않았다.

#장면 2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네티즌들이 공인인증서 때문에 한국 온라인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주문하지 못한다며 개선을 지시했다. 천송이는 중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대통령 지시에 금융위원회는 허겁지겁 온라인에서 30만원 이상 상품 결제할 때도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전자금융감독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검증 차원에서 알라딘에서 1만7500원짜리 중고 도서를 구매하려고 카드 결제를 시도해봤다. 계속된 프로그램 설치로 컴퓨터와 키보드만 먹통이 됐다.

같은 기간 해외결제시스템은 무섭게 진화하고 있다. 미국 기업 스퀘어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스퀘어 캐시’는 이메일로 돈을 보낼 수 있다. 저녁을 같이 먹은 친구에게 내 밥값 21달러를 송금해야 한다면, 이메일의 수신자(To) 항목에 친구 이메일 주소를, 참조(CC)항목에 ‘cach@square.com’, 제목(Subject)란에 송금액 21달러를 입력하고 보내기(send)만 누르면 끝이다. 이 결제 시스템은 인기몰이 중이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의 ‘알리페이(Alipay)’가 인기다. 고객이 미리 일정 금액을 계좌에 사전 예치하거나 신용·직불카드와 직접 연결해 온라인 구매 금액을 결제하는 서비스로 중국 결제시장의 50~60%를 장악했다. 최근엔 텐센트가 ‘텐페이(Tenpay)’, 바이두가 ‘바이두 월렛(Baidu Wallet)’을 내놓으며 간편 결제 경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복잡한 결제시스템 때문에 중도 결제 포기율이 53%가 넘고 결제 전담 상담사까지 배치해두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카드 업체는 “대통령 지시 이후 공공 기관의 인증 시스템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데 저희가 무엇을 더…” 라고 반문한다. ‘바위에 계란 치기’가 따로 없다.

혁신 없는 서비스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미 국내 카드업계는 ‘자멸(自滅)’의 길로 가고 있다. 중국의 알리페이는 롯데닷컴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항공권 구매사이트까지 400여개의 중국어판 한국사이트의 결제를 대행하고 있다.

이제 알리페이는 국내 소비자도 넘보고 있다. 지난 6월 15일 알리페이가 하나은행, 한국정보통신(KICC)과 국내 오프라인 결제시장 진출을 위한 제휴협약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무겁고 불편하고 보안성도 떨어지는 한국의 불편한 결제시스템이 알리페이의 한국 시장 진출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정부의 규제를 등에 업고 혁신 없이 돈을 버는 한국 카드업계에는 충격 요법이 차라리 답일 것이다. 전자상거래에서 툭하면 컴퓨터를 다운시키는 OO카드, 안심클릭, 공인인증서 대신 페이팔이나 스퀘어캐시, 알리페이를 쓰자. 십수 년 동안 두드려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후진적인 결제시스템을 버리는 것이 한국의 인터넷을 발전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