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도가(道家)의 철학서 장자(莊子)에는 '호접몽(胡蝶夢)'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장자가 나비가 돼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 잠을 깨니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꿈 것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만물일원(萬物一元·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이라는 심오한 깨달음을 담은 이야기다.

장자가 현대에 태어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을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가상현실 속의 나와 현실 속 나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했을지 모른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세계에 와있는 것같이 느끼게 해주는 '가상현실' 기기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페이스북·구글·소니 등 전 세계 첨단 기업이 뛰어든 가상현실 기기의 원리를 파헤쳐봤다.

진짜 같은 가짜… 뇌를 속여라

가상현실의 기본 원리는 '뇌를 속이는 것'이다. 사람의 뇌는 눈에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현실감을 느낀다. 따라서 실제 상황이라고 착각할 만한 영상을 두 눈 가득히 보여주면, 두뇌는 실제로 몸이 그 영상 속에 있다고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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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기기가 영상을 구현하는 방식은 3D(입체) TV와 비슷하다. 사람의 두 눈은 가로로 평균 6.5㎝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두 눈은 물체를 보는 각도가 서로 다르다. 양 눈이 각도가 조금 다른 영상을 각각 인지하면, 뇌는 두 영상을 더해 입체로 느끼게 된다. 3D TV는 영상을 보는 시선이 고정돼야 효과를 발휘한다. 시청자가 화면을 보는 동안만 3D 효과를 느낄 뿐,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면 단번에 '현실'로 돌아와 버린다.

이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가상현실 기기는 머리에 뒤집어쓰는 방식인 HMD(Head Mounted Display)' 디스플레이를 쓴다. 이 기기는 가속도 측정기와 중력 감지 장치 등 센서를 이용해 사람의 움직임에 맞춰 화면이 바뀌는 기능이 있다. 사용자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그쪽 방향에 맞는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컨대 한강 유람선 탑승을 내용으로 한 가상현실 프로그램은 실제 유람선에서 강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선을 따라 화면이 움직인다. 실제로 그 공간에서 육안으로 보는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것이다.

세계 첨단 기업들, 속속 가상현실 속으로

가상현실 기기는 먼 훗날에나 대중화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화면·센서·전원 등 부품이 너무 비싸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최근 다양한 가상현실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올 3월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킹서비스 페이스북에 23억달러(2조3240억원)에 인수된 오큘러스VR은 개발자용 제품 2종을 만들어 350달러(35만원) 이하 가격에 판매했다. 이 회사는 내년에는 일반 사용자용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구글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개발자 대회에서 '카드보드'란 이름의 조립식 가상현실 기기를 발표했다. 골판지로 만든 상자에 스마트폰을 끼우면 이 화면을 통해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최대한 저렴한 가상현실 기기를 만든 것이다. 일본 전자업체 소니 역시 '프로젝트 모피어스'란 이름으로 가상현실 기기를 개발 중이다.